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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크업 스토리

Description:...

“이 책은 단지 립스틱과 아이섀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은 왜 얼굴에 칠을 하고 광택을 낸 걸까? 예상보다 더더욱 기나긴 화장의 역사


세계적인 메이크업 아티스트이자 랑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그리고‘뷰티 멘토’로 두루 알려진 리사 엘드리지의 첫 책 『메이크업 스토리: 화장의 기나긴 역사』가 출간되었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미국의 『마리클레르』와 『틴보그』가 찬사를 보낸 책으로, 다채로운 도판과 일화들 그리고 탐구가 돋보인다.

리사 엘드리지는 메이크업 업계의 최전선에서 일하는 직업인이자 화장품에 대한 애정과 고민을 파고든 당사자로서 화장이 어떻게 우리에게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본다. 그의 탐구는 고대에서 현대까지, 각종 이름과 국가를 넘나들며 ‘화장’과 ‘화장품’이 가져온 갖가지 변화를 살피고 있다.

책은 서두에서부터 화장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왜 얼굴에 색을 칠하고 그림을 그렸을까? 인간은 선사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자연 그리고 화학 법칙에서 얻어낸 재료로 자신을 꾸며왔다. 이 행위가 품은 의미는 역사적 맥락에 따라 꾸준히 변화했다. 고대에 화장은 공동체 의식을 다지거나 적에게 두려움을 주는 용도로 사용됐지만, 현대에 와서는 아름다움·사회적 지위·젊음을 나타내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 

저자는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일어난 ‘화장’의 행위와 의의를 살피면서, 얼굴을 꾸미는 행위가 식욕과 수면욕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인간의 속성이라고 말한다. 그가 펼쳐내는 화장의 기나긴 역사는 그 사실을 증명하려는 듯 다양한 시기와 장소를 오가며, 우리를 화장의 세계로 불러들인다.


고대의 팔레트를 채운 빨강과 하양, 검정 그리고 그 너머의 다채로운 색채들

루주, 파우더, 아이라이너와 함께 드러나는 역사 속 여성의 얼굴


오랫동안 화장은 ‘여성의 일’로 취급됐고, 여성의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은 미용 산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어왔다. 저자는 이 사실을 인정하는 한편, 화장의 본질적인 범위는 그보다 더 넓다고 주장한다. 

화장의 다종다양한 맥락을 알 수 있는 좋은 사례 중 하나가 바로 남아프리카 동굴에서 발견된 붉은 오커다. 학자들은 이 오커가 약 7만~12만 년 전의 것이며, 몸과 얼굴에 바르는 용도로 쓰였다고 추정한다. 연구에 따르면 고대인들은 얼굴에 색을 칠하는 행위를 통해 자신이 어느 집단에 소속되어 있는지 확인했으며 적과 맞설 용기를 얻었다. 전투 전 나뭇잎에서 얻은 물감을 얼굴에 바르던 고대 브리튼인이나 검은 먹인 ‘콜’을 눈에 바르고 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하던 고대 이집트인이 대표적인 예다. 특히 이집트인의 화장에는 종교적 의미와 눈병 예방이라는 신체 보호의 목적이 두루 담겨 있었다.

물론 오늘날의 화장은 신이나 공동체와는 거리가 멀다. 많은 현대인은 자신의 얼굴을 사회적 ‘아름다움’에 맞추기 위해서 화장을 한다. 화장품 사업을 비롯한 미용 산업이 꾸준히 비판받는 이유도 그 때문일 테다. 오늘날 화장품을 포함한 미용 산업은 윤리적인 면에서 꾸준히 논쟁의 주제가 되고 있다. 논쟁을 만드는 주된 이유는 본 산업이 여성을 옥죄고 획일화된 미적 기준을 만들어낸다는 데 있다. 미용 산업은 많은 여성에게 표준화된 미적 형상을 따르게 만들며, ‘젊거나’ ‘성적인’ 외형을 규범처럼 요구한다. 수년 전부터 국내외 페미니즘 운동이 화장을 ‘꾸밈 노동’으로 명명하고 화장품 버리기 같은 캠페인을 진행한 것도 이러한 요구를 거부하기 때문일 테다. 

『메이크업 스토리』는 이러한 움직임들을 부정하지 않는다. 대신 여성들이 화장에 반발하거나 비판했던 태도까지 고스란히 담아내며 ‘화장’이 가진 여러 맥락과 의미에 관한 탐구를 밀어붙인다. 고대의 페이스 페인팅부터 현대의 메이크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화장의 형태를 관찰하고 이 행위가 여성의 자유·권리와 어떤 관계를 맺는지 톺아본다. 저자는 화장이 지닌 여러 의미를 궁리하며 “화장이 용납될 수 없는 것으로 비난받던 시기는 대체로 여성이 가장 억압받은 시기와 일치”했고, 오히려 화장이 활성화된 고대 이집트 여성들이 수백 년 후보다 더 나은 자율권을 갖고 있었다고 말한다. 

고대 그리스를 비롯한 과거의 지식인 남성들은 여성의 화장이 “거짓 얼굴”을 만드는 행위라고 비난해왔다. 그리스의 작가 크세노폰은 화장이 여성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왜곡하는 부정직한 행위라 일컬었으며, 성 키프리아누스는 화장이 신체로부터 “모든 진실을 몰아내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17세기 영국에서는 “화장, 얼굴에 붙이는 검은색 패치”를 금지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그러나 화장을 향한 남성의 비난과는 별개로, 여성에게는 계속하여 이상적 아름다움이 요구되었다. 여성들은 미의 기준으로 손꼽히는 하얀 피부와 붉은 입술을 만들기 위해 직접 화장품을 만들고 더 세련된 방법을 고민했다. 즉 본문이 인용하는 재클린 스파이서의 말처럼 그들에게는 “화장을 통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선택권이 없었으며 따라야 할 규범만 존재”했던 셈이다. 

저자는 이러한 상황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화장의 ‘의미’를 여러 갈래로 확장했는지 주목한다. 화장은 어떤 여성에게 자신을 옥죄는 족쇄였지만, 또 다른 여성에게는 사회에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기도 했다. 남성 지식인들이 비난한 “가짜 얼굴”은 여성들이 통제와 규범 속에서도 자신을 표현하는 방책으로도 쓰였다. 동아시아의 여성들은 치아를 검게 물들이며 악령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했고, 유럽의 여성들은 얼굴에 붙이는 패치를 통해 자신의 상태를 드러내는 법을 배웠다. 

저자가 과거와 현재를 번갈아 지나며 발굴해낸 이야기들은 ‘화장’ 문화 혹은 사업이 가진 다채로운 면모를 보여준다. 명화와 사진으로 기록된 역사 속 여성의 얼굴들은 화장이 어떻게 그들만의 독창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냈는지 말해주는 증거다. 각 장에 등장하는 ‘화장의 뮤즈’들에는 걸출한 여성들의 이름이 가득하다. 네페르티티부터 마리 앙투아네트 같은 역사적 아이콘부터, 테다 바라나 그레타 가르보를 비롯한 무성 영화의 주역들, 또 마돈나나 에이미 와인하우스 등 현대의 스타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스타일을 만들었다. 정치와 문화를 넘나드는 “가짜 얼굴”들은 오늘날까지 여러 형태로 변주되며 하나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작은 병에 담긴 ‘요만큼’의 것이 어떻게 사람들의 얼굴을 변하게 했을까?

오늘날 미의 유형을 창시한 선지자들부터 핸드백 속 화장품의 뒷면을 둘러본다


오늘날 화장의 스타일을 만드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들이 있다. 책에서는 그들을 미의 ‘선지자’ 혹은 ‘개척자’들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새로운 메이크업 스타일을 창시하거나 혁신적인 제품을 발표하며 화장의 세계를 여러 번 변화시켰다. 영화계에 최초로 메이크업 부서를 도입한 웨스트모어 가문이라거나 무대용 화장품을 혁신적으로 바꾼 맥스 팩터, ‘문제적 피부 유형’을 도입한 헬레나 루빈스타인은 아직도 현재 우리의 얼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명보다는 브랜드의 이름으로 더욱 친숙한 이들도 있다. 에스티 로더나 엘리자베스 아덴, 코코 샤넬 같은 이들이 그렇다. 그들은 제품 개발과 마케팅 그리고 자신만의 이미지 메이킹을 통하여 지울 수 없는 발자취를 남겼다. 에스티 로더는 처음으로 의사가 검진한 화장품을 발표했으며 무료 샘플 방식을 만들었다. 레블론 사의 창립자 찰스 레브슨은 공격적인 광고와 집중적인 제품 개발을 통하여 전 세계로 자사의 매니큐어와 루주를 내보냈다. 그들은 발명가와 사업가의 면모를 두루 갖춘 인물들로, 때로는 파격적이고 때로는 공격적인 방식으로 지금 우리가 아는 미의 유형을 세우는 데 기여했다.

화장품의 ‘고급’ 혹은 ‘고가’ 이미지를 완전히 깨부수고 젊은 층을 위해서 새로운 유행을 불러온 이들도 있다. 미니스커트와 더불어 신세대 여성을 위한 제품을 개발한 메리 퀀트나 기존 화장품과는 완전히 다른 (녹색, 파란색, 검은색) 색조를 만들어낸 바버라 훌라니키가 그렇다. 그들은 기존에 있던 아름다움의 유형, 즉 희고 밝은 피부에 붉은 입술이라는 오래된 본보기를 깨부수면서 전연 다른 형태의 모델을 창출했다. 그들의 제품은 여성들에게(때로는 남성들에게도) 금속성 광택이 나는 얼굴과 뿌옇고 어두운 색깔의 입술을 안겨주었다. 그야말로 얼굴 위에 ‘더 많은 색’을 도입한 셈이다.

핸드백 속 화장품에 관한 이야기 역시 무궁무진하다. 저자는 립스틱, 아이라이너, 마스카라, 파우더, 아이섀도 등 화장품들의 변천사를 파헤친다. 파우치 속에서 담긴 화장품들에는 모두 그 나름의 원형과 역사가 있다. 어떤 화장품은 예상보다 훨씬 오랜 역사를 가졌고 어떤 화장품은 아주 최근에야 발명됐다. 기원전 600년 주나라의 기록에는 손톱에 물을 들이는 풍습이 있었다는 내용이 있으며, 고대 이집트인과 로마인이 사프란이나 공작석을 사용해 아이섀도처럼 눈두덩을 장식했다는 기록도 있다. 반면 구릿빛 피부를 만드는 데 도움을 주는 브론저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화장품이다. 구릿빛 피부가 아름다운 피부 유형 중 하나로 다뤄지기 시작한 게 무척 최근의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세계적인 브랜드가 된 기업들의 초창기 모습도 등장한다. 코티가 어떻게 용기 디자인에 앞장섰으며,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펄프 픽션」에 등장한 샤넬의 ‘루주 누아르’의 출시 과정은 어땠는지, 디오르가 소비자 대상에 맞춰 다양한 콘셉트는 무엇이며, 스타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앞세운 슈에무라나 바비브라운은 왜 성공을 거뒀는지……. 

모든 분야가 그렇듯, 메이크업 업계 역시 지금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역사적 순간과 사람들의 손을 지나왔다. 저자는 화장이 품은 수많은 면모에 주목하고 얼굴을 꾸미고 단장하는 행위가 품은 복합적인 의미를 끌어내고자 한다. 우리가 잘 아는 사물들의 과거와 미래를 들여다보노라면 우리가 아는 미적 기준이 어찌나 유동적이며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은 어찌나 지속적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완벽한 얼굴 대신 더 다양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방법

화장과 화장품의 역사를 넘어가며 하나씩 발견해가는 다채로운 미의 이미지


화장을 포함해서, 얼굴과 몸을 단장하고 꾸미는 행위는 여전히 꾸준한 논의를 필요로 한다. 저자가 직접 지적했듯이 화장을 위시한 미용 산업은 오랫동안 여성의(때로는 남성의) 죄책감과 수치심을 자극하는 태도를 내세웠다. 1922년의 『보그』 광고가 그랬듯이 “당신이 예뻐 보이지 않는 것은 본인 탓”이라고 주장하며, 남편에게 사랑받기 위해서는 젊고 건강한 외모를 유지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전쟁 시에도 여성에게 “밝은 혈색”을 의무처럼 요구했다. 그보다 더 이전 시대의 여성들은 미백과 광채 효과를 얻기 위해 방사성 물질이 들어간 화장품을 사용하다가 끔찍한 부작용을 겪기도 했다. 

『메이크업 스토리』는 여성에게 주어지는 외모에 대한 압력, 또 메이크업 문화와 관련 기업이 보여준 성차별의 형태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저자는 다양한 여성에 대해 다루는 만큼 그들이 가져야 했던 외형적 부담과 위험에 대해서도 묘사한다. 본문에서 인용하는 학자들의 말처럼 화장하는 일은 종종 “여성미에 대한 이미지를 여성의 진보를 저해하는 정치적 무기”가 됐다. 오늘날의 미용 사업 역시 “완벽함의 추구와 무자비한 상업화의 결합”을 통해 소비자들에 더 무거운 압력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화장 자체를 완전히 포기하는 대신에 그 이면에 숨겨진 여러 의미를 함께 찾아보자 건의한다. 그는 화장을 미용 산업의 부속물로만 다루는 태도에 반대한다. 대신 화장을 인류사 내내 이어져 온 원시적 본능의 일부로 보고자 한다. 얼굴에 색을 칠하거나 그리는 행위는 소속된 집단의 정체성을 보여주었고, 성적 매력을 드러내는 장치로도 쓰였다. 고대 이집트의 눈화장이나 동아시아의 검은 치아가 그러했듯 영적인 의미 또한 가졌다. 여러 논란과 갈등이 있었지만, 메이크업은 여전히 살아남아 여러 형태의 얼굴을 건너며 존재해 왔다. 앞으로도 여러 과학 기술과 접목하며 새로운 미의 양상을 만들어갈 것이다.

저자는 화장이라는 분야를 일차원적으로만 판단하고 폐기하지 말고 더 나은 방식으로 만들어가자고 제안한다. 더불어 화장이 획일화된 아름다움의 장치가 아닌 다양한 종류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쓰인다면“권력 분산의 수단”이 될 수 있으리라 주장한다. 연구와 대화가 지속될수록 선택할 수 있는 영역 또한 넓어지기 때문이다. 

이로써『메이크업 스토리』는 화장의 역사적 배경과 문화적 맥락, 기술적 면모까지 두루 살피며 우리에게 어떤 선택지와 자유가 있는지 논한다. 물론, 그 중심에는 서로 다른 여성들의 얼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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