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에 신혼여행
Description:... ■ 책소개 “한국은 싫지만, HJ는 좋다” 인생 앞에 굴복하지 않는 젊은 부부의 신혼여행 분투기 앞으로 우리 부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이런 에세이를 써놓은 주제에, 내가 술에 취해 바람을 피우게 될지도 모르고, HJ가 운명적인 사랑을 발견해 나를 떠날지도 모른다. 그러면 아마 이 책은 결혼과 사랑과 믿음에 대한 지독한 아이러니의 사례가 되겠지. 나는 두고두고 놀림감이 될지도 모른다. 장강명의 첫 에세이 《5년 만에 신혼여행》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짧게 말하면, 소설가 장강명의 뒤늦은 신혼여행 이야기이고, 길게 말하면, 소설가 장강명이 2014년 11월에 HJ와 3박 5일로 보라카이에 신혼여행을 다녀온 여행 이야기이다. 그리고 제대로 말하면, 한국에서 자라서, 자신이 희망하던 것들 앞에서 좌절하고, 번번이 부모와 부딪치고, 미래에 대한 기대와 실망을 번갈아 하던, 그리고 우연인지 운명인지 모르게 대학에서 HJ를 만나 사랑의 여러 빛깔을 경험하고 있는, 우리와 하나도 다를 것 없는 한 남자 장강명의 이야기이다. 3박 5일간의 신혼여행을 하며 작가는 자신의 청춘, 연애, 결혼, 그리고 결혼 후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꺼내놓는다. 별 희망이 안 보이던 자신에게서 어떻게 희미하게나마 무언가를 건져냈는지, 첫사랑, 첫 섹스, 첫 직장 생활 같은 것들에서 어떻게 벗어났는지,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HJ와 어떻게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는지, 그리고 끝내 한국을 떠나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왔는지. 그러므로 《5년 만에 신혼여행》은 연애와 결혼, 가족, 인생에 대한, 그리고 그 모든 것들에 굴복하지 않은 채 살아온 장강명의 인생 분투기라고 해도 될 것이다. 그런데 소설가 장강명은 왜 5년 만에야 신혼여행을 떠나야 했을까? 우리는 어떻게 시시한 세상을 견디며 청춘을 보내야 할까? 시시한 세상이고, 찌질한 청춘이다. 아무리 둘러봐도 우주의 신비 같은 건 보일 기미가 없다. 시대의 흐름을 읽는 것도,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깊이 관찰하는 것도 모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일 같다.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건 나를 포함해 인간 두 명, 화분 몇 개, 동물 한두 마리 정도가 고작”이며 그것 또한 어지간한 마음가짐으로는 지켜내기 어렵다. 무언가 해보려고 할 때마다 예고도 없이 찾아온 시시콜콜한 일들이 우리의 평온한 일상을 뒤흔들고 지나가버린다. 그것도 거의 매일. 연애는 어렵고, 결혼은 더 어렵다. 결혼식이나 예단, 예물만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다. 아이는 상상할 수도 없다. 혼자 사는 것도 만만치 않다. 그렇기에 《5년 만에 신혼여행》을 집어 들며 우리는 물을 수밖에 없다. 장강명은 어땠을까? 메이저 신문기자 출신에, 문학상 네 개를 휩쓸며 한국문학의 대표 작가로 떠오른 그의 청춘은 그의 지금은 어떨까? 대학을 9학기째 다니고 있으면서도 꼭 선후배와의 만남 자리는 나가고, 부모의 집을 나와 고시원에 살다가 매트리스랑 모텔용 냉장고만 두고 원룸에서 살고, 공업수학 강의를 들으며 머리의 한계를 느끼고, 언론사 준비 스터디를 쫓아다니며 신문사와 방송사 입사 준비를 하지만 모두 떨어지고야 마는, 결국 어느 건설사에 취직하지만, 거기서도 얼마 못 가 그만두고야 마는 청춘, 어떤가? ‘장강명’이 아니라 ‘장공명’이나 ‘장강수’ 같은 이름을 넣더라도 다를 거 없는 청춘이다. 그리고 그런 청춘은 소설가가 되고 신혼여행을 가서도 계속된다. ‘내가 소설가로 성공할 수 있을까?’ ‘이번 책은 얼마나 팔릴까?’ 하고 생각하니 말이다. 내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내가 옳은 선택을 한 걸까?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마흔이 되어서까지 그런 걸 고민한다는 게 이상했다. 마흔이 되어서도 그런 걸 고민한다는 게 이상하다는 작가를 보면서 무언가 시시함이 좀 줄어드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그것만으로 괜찮은 거 아닐까. 적어도 이 시시한 세상을 견디고 있는 게 나 혼자는 아니니까. 야무지게 재미있는 걱정이 될 정도로 솔직한 《5년 만에 신혼여행》은 장강명의 ‘첫’ 에세이다. 장강명이 에세이라고? 에세이도 재밌을까? ‘첫’이란 늘 기대와 우려가 한데 섞여 찰흙처럼 단단히 뭉쳐지는 법이다. 다행히도 첫 장 ‘2001년~D-2개월: 결혼을 해야 하는 데드라인과 사랑의 메신저’를 펼치자마자 그런 걱정과 우려는 말끔히 씻겨나간다. 눈이 밝은 사람이건 눈이 어두운 사람이건 이 에세이가 엄청나게 재미있다는 사실은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그냥 재미있는 것도 아니고 “야무지게” 재미있다. ‘더블린에 있는 것과 사장님들이 정하는 것’ ‘섭식 장애가 있는 듯한 커플과 바보 같은 눈물’ ‘숨을 쉬는 법과 사도마조히즘의 세계’ ‘승합차의 최종 도착지와 유황 지옥에 빠지는 기분’ 등 열여덟 장의 제목을 읽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으니 말을 해서 더 뭐할까. 그럼 재미가 다일까? 물론, 아니다. 작가의 지극히 개인적인 일화들은 보라카이 화이트 비치에서 선탠 중인 사람들처럼 책 곳곳에 누워 있다. 어쩌면 치부일지도 혹은 단점이거나 숨기고 싶을지도 모를 그런 일들이 작가의 목소리로 아무렇지 않게 쓰여 있다. 《한국이 싫어서》, 《표백》, 《호모도미난스》 등을 읽으며 작가에게 궁금한 게 생긴 독자라면 이 책을 읽으면 된다. 그러면 “아!” 하고 ‘장강명’이란 소설가와 ‘장강명’이란 사람을 동시에 알 수 있다. 우리는 아이를 갖지 않고 둘이서 잘 살기로 했다. 그런 결심을 하고 나는 신촌의 비뇨기과에 가서 정관수술을 받았다. 어영부영하다가 결심이 흔들릴 게 두려웠다. 비뇨기과 의사가 “자녀는 몇 분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둘 있습니다”라고 거짓말했다. 우리 집 창고 문에는 ‘효도는 셀프’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다(HJ가 붙였다). 내 부모님은 나에게 효도를 받고, HJ의 부모님은 HJ에게 효도를 받으면 안 될까? 기타노 다케시는 가족에 대해 “누가 보지만 않으면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말했다. 내 가족관은 기타노 다케시보다 훨씬 건강하다. 나는 내 가족을 아무도 내다 버리고 싶지 않다. 다만 그들을 서로 만나게 하지 않을 뿐이다. 그들이 서로를 대형 폐기물로 여기지 않게 하기 위해. 그래서 책을 읽으며 우리는 ‘3박 5일간’이 아니라 마치 ‘35년간의’ 여행 에세이를 읽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런 걸 써도 되나? 하고 걱정이 될 정도로 솔직하고 거침없으니까. 생각해보자. 이런 에세이가 또 있었나? 인생이 행복한지 불행한지는 계속 살아보는 수밖에 내 생각에는 전형적인 한국식 결혼식은 빼빼로데이와 매우 비슷하다. 언젠가부터 점점 호사스러워지고 있고, 장식이 본질을 압도하고 있으며, 이제는 거대 산업이 되어버렸다. 업체들이 호사스러움을 부추기고 있으며, 소비자들은 모두 그게 허세이고 바보 같다는 걸 알면서도 그 상술에 넘어가고야 만다. 왜 이런 미친 짓거리가 사라지지 않을까? 내 생각에 그 이유는, 모든 사람들이 이 미친 짓거리에 협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미친 짓거리에 협조하지 않는 자들을 “걔 원래 좀 특이하잖아”라며 이단자 취급하기 때문이다. 그 미친 짓거리를 성대하게, 무의미하게 치러낼수록 찬탄을 사고 그 사실을 자랑스러워하기 때문이다. HJ와 작가는 ‘좋은’ 결혼식을 올리고 싶었다고 말한다. 물론, 둘의 뜻대로는 되진 않았지만. 결국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고, 결혼식 대신 전철을 타고 마포구청에 가서 혼인신고를 하고, 구청을 나와서는 뷔페 대신 순댓국을 먹었다. 예단이고 예물이고 아무것도 없이 장모님이 사준 냉장고 하나를 가지고 20평대 전세아파트에 들어가 동거를 했다. 그렇게 시작한 결혼. 한국이 아니었다면 두 사람이 바라던 대로 (생각만큼 좋은 결혼식은 아니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을까? ‘가격 대비 성능비(수익을 생각하지는 않는)’를 따지고, (싸울 때도) 야무진 두 사람이니까 분명 ‘좋은’ 결혼식을 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두 사람이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 호주나 캐나다에 가지 않고 한국에 남아줘서. 한국에서 계속 지지고 볶고, 서로에게 다정하고 친절하게, 틈만 나면 “나 좋아?” 하고 묻고 “조금 좋아.” 하고 대답하며 살아줘서. 우리는 안다. 장강명과 HJ가 한국을 싫어한다는 걸, (뭐 싫어하진 않을지도 모르지만) 한국의 여러 지점을 마뜩잖게 여기고 있다는 건 안다. 하지만 둘은 서로가 끔찍하게 좋다. 그 사랑이 한국을 떠나지 않게, 더 즐겁고 의미 있게 살아오게 했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거면 된 거 아닐까? ‘5년 만에 신혼여행’이든 ‘50년 만에 신혼여행’이든 인생이 행복한지 불행한지는 계속 살아보는 수밖에 없으니까. ■ 차례 2001년~D-2개월까지: 결혼을 해야 하는 데드라인과 사랑의 메신저 1998년~D-6개월까지: 양립할 수 없는 가치와 세계사의 위인들 D-약 60일: 보라! 울트라 괴기 시리즈와 모험을 벌여야 할 때 D-약 30일: 미친 짓거리의 뼈대와 사람 뇌로 만든 도시락 D-1일: 더블린에 있는 것과 사장님들이 정하는 것 첫째 날 오전: EU의 블랙리스트와 독일군 포로수용소 첫째 날 오후: 귀신의 집과 쾌락의 총합 이론 첫째 날 밤: 섭식장애가 있는 듯한 커플과 바보 같은 눈물 둘째 날 오전: 이 불공평한 세계와 자기파괴적인 봉사 활동 둘째 날 오후: 허구를 상상하는 능력과 깊은 밤중에 있는 듯한 기분 둘째 날 밤: 우주를 여행하는 기분과 멍한 화장품 광고용 얼굴 셋째 날 오전: 숨을 쉬는 법과 사도마조히즘의 세계 셋째 날 오후: 조각조각 난 사유지와 성스러운 의무 셋째 날 밤: 바빌론의 타락한 창녀들과 2 더하기 2는 5 넷째 날 오전: 캘리포니아 드리밍과 수확체감의 법칙 넷째 날 오후: 중세풍 모험과 게을러터진 바다사자 넷째 날 밤~다섯째 날: 승합차의 최종 도착지와 유황 지옥에 빠지는 기분 21개월 뒤: 이러저러한 물 순환의 단계와 앰브로즈 비어스의 최후 작가의 말 ■ 책 속으로 우리는 아이를 갖지 않고 둘이서 잘 살기로 했다. 그런 결심을 하고 나는 신촌의 비뇨기과에 가서 정관수술을 받았다. 어영부영하다가 결심이 흔들릴 게 두려웠다. 비뇨기과 의사가 “자녀는 몇 분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둘 있습니다”라고 거짓말했다. _2001년~D-2개월: 결혼을 해야 하는 데드라인과 사랑의 메신저, 군대에 있을 때 기자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병장 때쯤. 기자가 되고 싶어서 그런 결심을 한 게 맞지만, 공업수학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다. 적어도 공학을 더 공부하는 게 내 길이 아님은 분명해 보였다. 공업수학 강의를 들으면서 그때까지 평생 어떤 공부를 하면서도 얻지 못한 교훈을 배웠다. 바로 ‘아, 내 머리는 여기까지구나’라는 깨달음이었다. _1998년~D-6개월: 양립할 수 없는 가치와 세계사의 위인들, 우선 내 감정이 중요하다. 나는 즐겁게 살고 싶다. 내 인생 3년을 그런 쓸모없는 일에, LPG 가스통과 화기를 서로 친하게 만드는 작업에 낭비하고 싶지 않다. 기회비용도 엄청나다. 그런 일에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나 자신에게 집중해 건강하고 활기 넘치는 감정 상태로 스스로를 가꾸면 3년 동안 장편소설을 최소한 다섯 편은 쓸 수 있다. 내가 건강하고 활기 넘치는 감정 상태로 있어야 아내도 사랑하고 부모님도 사랑할 수 있다. 남을 사랑하는 일에도 에너지가 든다. 솔직히 내 부모님과 HJ가 왜 서로 친하게 지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_D-약 60일: 보라! 울트라 괴기 시리즈와 모험을 벌여야 할 때, 우리 부모님이 특별히 나쁜 분들은 아니다. 사실 이건 대부분의 한국 부모들이 공통으로 갖는 문제다. 자식들의 인생에 과도하게 간섭하는 것. 자식이 타인임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 자식들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정신적인 폭력을 서슴지 않는 것. 그리고 나는 그 부모들을 이해한다. 그런 폭력의 원인은 대부분 사랑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자식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자식이 위험에 빠지는 광경을 두고 볼 수가 없다. 그들은 안락한 감옥을 만들어 자식을 그 안에 가두고 싶어 한다. 과보호. 그리고 그 감옥 안에 갇혀 있는 한 자식은 영원히 성인이 될 수 없다. 인간은 자기 인생을 걸고 도박을 하는 순간부터 어른이 된다. 그러지 못하는 인간은 영원히 애완동물이다. __D-약 60일: 보라! 울트라 괴기 시리즈와 모험을 벌여야 할 때, 두 세대쯤 더 지나면 빼빼로데이가 우리 민족 고유의 명절이 될지도 모르겠다. 정월 대보름에 팔리는 나물이나 동짓날 판매되는 팥죽의 매출액이 11월 11일에 팔리는 빼빼로 관련 상품 매출의 10퍼센트라도 될까? _D-약 30일: 미친 짓거리의 뼈대와 사람 뇌로 만든 도시락, 여행을 갈 때 들고 가는 책은, 가벼우면서도 진도 안 나가는 물건이 최고다. 글이 너무 재미있고 감동적이면 여행의 감흥이 반감된다. 내가 강력히 추천하는 여행용 서적은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이다. 얇은데 정말 더럽게 지루하다. 여행 중에 이 소설을 읽으면 여행의 재미가 틀림없이 배가된다. ‘내가 어디에 있건 더블린에 있는 것보다는 낫겠지’ 하는 마음이 절로 드니까. _D-1일: 더블린에 있는 것과 사장님들이 정하는 것, 우리가 5년 만에 신혼여행을 떠나, 보라카이 해변에서 부부 싸움을 벌인 것도 운명이 아니다. 우연일 뿐이다. 그리고 우연이 허락하는 한도 안에서 우리는 뭐든 할 수 있다. 우연은 아무리 연이어 일어나봤자 우연의 연속일 따름이다. 거기에 의지가 섞여 들어가야 운명이 된다. “말싸움할 때 그렇게 부득부득 이기려 들어야 돼? 안 그래도 힘들어 죽겠구만.” HJ가 말했다. “언제는 내가 꿋꿋하다며 좋아했잖아. 옛날 남자 친구들은 다 자기가 뭐라고 하면 고양이 앞의 생쥐처럼 벌벌 떨었다고. 그러면 그 꼴이 보기 싫었다며. 경멸스럽다고.” 내가 말했다. HJ는 나의 굴복하지 않는 기개를 좋아했다. 플라톤이 ‘티모스(Thymos)’라고 불렀던 바로 그 정신 말이다. HJ의 친구들이 그녀와 내가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했던 것도 그런 의미였다. 한 성깔 하는 두 남녀가 서로 사귀니,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처럼 죽이 잘 맞는 파트너처럼 보였던 것이다. “몰라. 피곤해.” HJ가 한숨을 쉬었다. 우리는 오후 10시에 버짓마트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리조트로 돌아왔다. 그게 막차였다. _둘째 날 밤: 우주를 여행하는 기분과 멍한 화장품 광고용 얼굴, HJ는 처음 나와 사귈 때 내가 아버지가 되면 안 될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다른 사람 일에 나처럼 무심하고 냉정한 사람은 그때까지 본 적이 없었다는 거다. 그러다가 나와 함께 살게 된 뒤로는 생각이 180도 바뀌어, 내가 만약 아버지가 된다면 훌륭한 아버지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내가 정성스럽게 화분과 물고기나 달팽이를 키우는 모습을 보고 몹시 놀랐다는 것이다. 나는 선물로 받은 손바닥만 한 화분들을 작은 나무로 키웠고, 멕시카나 치킨 사은품으로 온 애완용 열대어 제브라다니오는 우리 집에서 3년 넘게 살았다. “그건 사랑이 아냐. 그냥 성실한 거야.” HJ의 칭찬에 당황한 내가 말했다. 나 스스로도 내가 사랑이 많은 인간이라고 여기지는 않았다. 내가 사랑할 수 있는 건 나를 포함해 인간 두 명, 화분 몇 개, 동물 한두 마리 정도가 고작 아닐까 싶었다. “그게 사랑이야.” HJ가 대답했다. 성실한 게 사랑일까? _셋째 날 오후: 조각조각 난 사유지와 성스러운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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