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 - 문학과지성 시인선 322
Description:... 이준규의 시는 기성 시단이 보여주었던 어떤 시류에도 쏠린 바 없으며, 기성 시단에 빚진 게 없으므로 그의 시는 그간 놀라울 만큼 ‘새로운’ 유형의 이미지들을 쏟아놓아 시단을 긴장시킨 바 있다. 2000년 『문학과사회』 여름호의 신인을 추천하는 해설에서 평론가 정과리는 이준규 시의 “언어의 풍경은 당혹스러운 이미지들로 가득 차 있”으며 그 “대담한 상상력으로 놀람을 일으”키는데, 이러한 시인의 시 쓰기가 “문화적 코드를 통째로 파괴하는 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은 바로 어떤 특정한 문화적 코드(들)에 대한 도전(혹은 저항)이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인 것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상황 자체를 부숴야 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신인의 문학이 주는 충격은 대략 두 가지 방향에서 온다. 하나는 시대의 변화가 문화적 감각을 변모시키는 경우이다. 다른 하나는 문학사가 멈춘 지점에서 입문한 작가·시인이 전혀 다른 문법을 창안하는 경우다. 앞의 것은 자연스럽고 충동적이고, 뒤의 것은 의도적이고 숙고적인 것이다. 신인 문학의 이 두 원천은 그러나 같은 장소에 인접해 있으며, 그것들이 길항하면서도 서로를 자극할 때 신인 문학을 탄생시킬 수 있다. 이준규 시인은 물론 후자에 해당된다. 즉 “의도적이고 숙고적인 것”으로써 “문학사가 멈춘 지점에서 [......] 전혀 다른 문법을 창안”한 경우이다. 그리하여 그의 “기아와 고통과 환각과 죽음 그리고 외로움의 공간”에서의 시 쓰기는 등단 이후 6년 동안 “전혀 다른 문법”들로 채워져 이번 시집에 예순세 편의 시들로 오롯이 묶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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