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섭 씨가 김민섭 씨를 찾습니다!
세상에 지친 당신을 위로하는 작고 선량한 재치
체험에서 오는 진솔함, 필체가 주는 따뜻함, 사회적 고찰이 주는 깨달음을 고루 갖춘 작가 김민섭이 신간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를 출간했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누군가를 위해 벌인, 작지만 힘센 에피소드가 담겨 있다. 특히 동명의 대학생을 찾아 후쿠오카행 비행기 표를 양도했던 ‘김민섭 씨 찾기 프로젝트’가 후일담과 함께 실려 있어 이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반가움을, 생소한 독자에게는 신선함을 선사할 것이다.
김민섭식 따뜻한 위로, 선량한 유머를 기다리는 독자에게 좋은 선물이 될 책이다. 이 책에는 김민섭이 사회적 자존감을 찾으려고 시도한 일들이 수록되어 있다. 작가는 헌혈을 하며 자신의 피가 타인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대학 공부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뿌듯함을 느꼈노라고 고백한다. 이밖에도 팬데믹 속에서 서로 만나지 않고도 각자의 자리에서 뛸 수 있을 만큼 뛰며 서로의 존재를 알리고 소통하는 몰뛰작당 프로젝트, 교통사고 가해자의 무례한 언행으로 야기된 고소 경험 등이 작가만의 문체로 실려 있어 재미와 의미를 모두 충족시켜 준다. 훈훈함에 찡하다가도 위트에 웃게 되는, 작고 의미 있는 김민섭 표 위로 에세이
김민섭. 경계에서 연결을 사유하는 작가
김민섭의 글은 김민섭이라는 사람 자체다. 작가는 직접 겪은 일에서 포착해 낸 사회의 단면을 담백하게 표현하며 주목받아 왔다. 나는 지방대 시간 강사다에서는 낮에는 시간 강사, 새벽에는 맥도날드 알바생으로 일하며 깨달은 대학의 부조리를 고발했다. 그 후 타인의 운전석에 앉아 오롯한 ‘을’로 존재할 수밖에 없었음을 고백한 대리 사회, 마포 일대를 부촌과 빈촌으로 나누던 암묵적 경계를 넘나든 경험을 회고한 아무튼, 망원동까지 작가는 경계에 서서 자신을 던져 가며 일으킨 파동으로 꾸준히 자신의 동심원을 넓혀 왔다.
이번 신간에 김민섭은 ‘당신(우리)’을 겪어 낸 이야기를 담았다. 김민섭식 재치가 녹아 있는 네 가지 에피소드가 한 권으로 엮였다. 예의 김민섭만의 진실되고 따스한 면모가 느껴지는 책이다. 소위 ‘인싸’가 될 기질은 없지만 한쪽에서 차분한 온기를 내뿜는 모닥불이 되길 소망한다는 작가 김민섭. 작아도 분명한 의미로 존재하며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노력하는 작가의 모습이 담겨 있다. 고루한 느낌 때문에 이제는 좀처럼 쓰지 않는 ‘선함’이라는 단어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책이다.
그저, 당신이 잘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김민섭 씨 찾기 프로젝트
작가는 생애 첫 해외여행을 떠나려고 후쿠오카행 비행기표를 예매한다. 그러나 갑작스레 잡힌 아들의 수술로 여행을 취소하는 바람에 비행기삯을 환불받을 수 없게 되자 표를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영문 이름 표기가 같은 동명이인을 찾으면 된다는 여행사의 대답에 작가는 SNS에 후쿠오카로 떠날 김민섭 씨를 찾는다는 글을 올린다. 기대 반, 재미 반으로 시작한 일. 자신보다 더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양보하겠다며 디자인을 공부한다는 대학생 김민섭 씨가 나타난다. 그의 등장을 기다렸다는 듯이, 그에게 숙박비, 후쿠오카 교통권 등을 선물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등장한다. 후쿠오카로 떠나는 날, 대학생 김민섭이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왜 자신을 도와주는지 묻자 작가는 다른 사람들을 대신해 ‘그저 당신이 잘되면 좋겠다는 마음’이라고 대답한다.
동화 같은 에피소드로 사람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했던 ‘김민섭 씨 찾기 프로젝트’에서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라는 이 책의 제목이자 메시지는 시작되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려는 청년에게 보내는 격려, 그 격려를 보내는 각자가 품는 충만한 뿌듯함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말로 독자에게 다가가려 한다. 이 책을 읽는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잘되면 좋겠다고. 그럼 작가 김민섭도 우리도 모두 잘될 수 있을 거라는 소망을 담았다.
“그런데, 잘 모르겠어요, 왜 사람들이 저를 이렇게 도와줬을까요. 저는 특별할 게 없는 사람이잖아요. 작가님은 저를 왜 도와주신 거예요?” 사실 그건 내가 그에게 묻고 싶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도 나에게 그것을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그에게 멋진 답을 해 주고 싶었다. 아마도 나는 그런 책임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도무지 적합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 뭐라고 해야 하지.
그때, 나도 불과 몇 년 전에 같은 질문을 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이었다. 『나는 지방대 시간 강사다』라는 책을 쓰고 대학에서 나왔을 때 사실 많이 외롭고 막막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연구를 중단했고 내가 수집하고 정리한 자료는 비슷한 연구를 하는 연구자에게 모두 보내 주었다. 그때 나에게 손을 내밀어 준 분들이 있었다.
『대리 사회』라는 책을 쓰고 그분들을 찾아가 인사를 드렸다. 덕분에 제가 두 번째 책을 내게 되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고는 그들에게 물은 것이다. “저어, 그런데 저를 왜 도와주신 겁니까?” 놀랍게도, 그들의 답은 거의 비슷했다. 서로 아는 사이가 아니면서도 그랬다. 그래서 나도 93년생 김민섭 씨에게 그 말을 돌려주기로 했다. 그에게 말했다.
“그냥, 당신이 잘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들의 말을 단순히 돌려주었다기보다, 언젠가부터 나도 그런 마음이 되고 말았다. 이 평범한 청년이 여행을 잘 다녀오면 좋겠다고. 그러면 왠지 그가 앞으로 잘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뿐 아니라 그와 닮은 평범한 청년들이 모두 잘될 것 같았고, 무엇보다도 나도, 우리도, 모두 잘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93년생 김민섭 씨가 여행을 잘 다녀와서 잘 졸업하기를, 잘 취업하기를, 그리고 그가 잘되기를 많은 사람들이 바랐다. 그러면서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잘됨을, 아마도 모두 바랐을 것이다. 그러니까 ‘당신이 잘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라는 말 뒤에는 ‘그러면 저도 우리도 다 잘될 거예요.’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었다.
본문 104쪽~107쪽
연결, 사회적 존재로 자신을 감각하기 위하여
이미 전작에서 고백했듯, 작가는 대학 공부가 사회에서 의미 있는 일인지 확신할 수 없어 공부를 그만두었다.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에는 그렇게 결심하기까지 작가가 지나온 생각의 타래들이 차근차근 풀려 있어, 독자들이 작가의 생각을 짚어 가며 읽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대학 생태계에 자리 잡으려고 권위적이고 답답한 분위기 속에서 먼지처럼 부유했었노라고 김민섭은 대학원 시절을 회고한다. 자신과 심사위원, 지도 교수 셋이 독자의 전부인 논문을 쓰고, 언제 교수가 될지 몰라 막막한 시간을 보내던 중 작가는 영화표를 받으려고 시작했던 헌혈이 자신이 쓰는 글보다 다른 사람에겐 더욱 요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비로소 한 사람의 인간으로 자존감을 느낀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는 느낌은 착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졸업이나 취업 등 사회가 정해 놓은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 데서 오는 무력감이나 사회에서 소외된 듯한 외로움을 느끼는 이들에게 필요한 감각일 것이다. 내가 사회 속에서 하나의 존재로 인정받으며 사회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작가는 헌혈이라는 사소한 경험을 통해 깨닫는다.
먼지가 된 몸에서도 간호사는 용케 혈관을 찾아냈다. 나의 몸에서 나온 피가 투명한 튜브를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나는 나의 피를 보고 있을 만큼 강한 인간이 아니다. 이전의 트라우마와는 관계없이 그런 걸 보면 정신이 아득해진다. 그러나 그때는, 나의 몸에서 나오고 있는 피를 꽤 오랫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눈물이 났다. 누군가가 봤다면 참 민망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다 큰 어른이 헌혈하다가 울다니. 아파서 운 건 아니었다. 내 몸에서 나온 피를 보는 순간 ‘저 피는 내가 쓰는 논문과는 다르게 누군가에게 쓰이겠구나, 그러니까 저건 사회적인 물건이겠구나.’ 하는 전에 없던 감정이 찾아온 것이다. 논문도 피도 나의 몸에서 나왔지만 그것이 가지는 사회적 가치는 달랐다. 내가 쓴 글이 누구에게 가서 닿을지 알 수 없었던 나는 대학원생들과 함께 “우리의 글은 딱 세 명이 읽는다, 지도 교수와 심사 위원과 나.” 하는 농담을 하면서 웃곤 했다. 내가 쓴 논문은 투고비와 심사비를 지불하고 내가 직접 학회에 보내야 했다. 그러나 지금 나오고 있는 나의 피는 다를 것이었다. 혈액 수송 차량이 빠르고 안전하게 가장 필요한 누군가에게 전할 것이다. 그러니까, 나에게도 그런 게 있었다. 타인과 연결될 수 있고 타인에게 쓰임이 있는 무언가가 내 몸 안에 존재한다. 그 순간, 나의 몸은 더 이상 먼지가 아니었다. 내가 사회적인 존재라는, 실로 오랜만의 자각이었다. 나는 지금 누구보다도 가장 사회적인 존재로 여기에 있다.
본문 41쪽~42쪽
약자로서, 상식을 가진 선량한 시민으로 견뎌 온 우리에게
선함, 우리가 지닌 단단한 평범함
‘상식’이 무너지는 시대다. 당연한 예의가 무너지고 진상, 갑질 같은 단어를 자주 접하게 된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김민섭 역시 자신이 알고 있는 상식이 무너지는 경험을 한다. 운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경미한 교통사고. 사람이 다치지 않았고, 상대방의 차체 일부가 손상된 교통사고에서 작가는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의 모욕을 당한다. 상식적인 예의를 지켜가며 이야기를 나눈다면 보험사를 통해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는 일. 작가는 상스러운 욕을 융단폭격처럼 날리는 가해자를 고소하고 벌금 70만 원의 판결을 받아 낸다.
작가가 SNS에 올린, 교통사고를 담담히 써 내려간 글을 본 사람들은 그동안 자신들이 느꼈던 약자로서, 상식을 가진 선량한 시민으로서 견뎌야 했던 일들을 늘어놓는다. 그 댓글을 읽어 가며 작가는 ‘우리’를 생각했다고 한다. 만약 작가가 여성이었다면, 노약자였다면, 나이가 어렸다면 더 심하게 겪었을 모욕들을 생각하며 상스러운 말로 자신을 공격했던 상대 차주를 모욕죄로 고소한 것이다.
고소를 진행하며, 김민섭은 자신을 지지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응원에 힘을 받는다. 다른 사람으로 인해 자신이 무너지는 경험을 겪고도 이를 앙갚음으로 해소하지 않은 선한 사람들. 그들이 보내온 단단한 지지를 받아 정당하고 단호한 방법으로 자신의 자존감을 찾아 나간다.
나는 그를 고소한다. 그 이유는 나와 나를 닮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의 무례함을 용인하거나 묵인하고 나면 그는 또 누군가에게, 언젠가는 나와 만나야만 할 나와 닮은 이들에게 여전히 무례할 것이다. 나는 내가 만났던 이들뿐 아니라 내가 앞으로 만나야 할 이들이 어디에서든 덜 상처받고 나에게 다다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서로를 지키며 잘 지내다가 언젠가 반갑게 만나고 싶다. 고소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는 이전보다 조금은 더 눈치를 보게 될 것이다. 갑자기 좋은 사람이 되지는 않겠으나 법의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착한 사람 코스프레’라도 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즐겁게 이 일을 진행해 보기로 했다.
본문 162쪽
피를 나누고, 대학생에게 후의를 베풀고, 고소를 하고, 체육 공원을 달리며
우리의 연결은 현재 진행형
김민섭은 모르는 이들이 보낸 선의를 응축시켜 세상에 내보내며 이 책의 에피소드를 꾸려 왔다. 그는 요즘 마포의 한 체육 공원을 뛰고 있다. SNS를 통해 함께 모여 각자의 속도대로 뛰는 모임을 만들었다가 코로나를 기점으로 조심조심 자신만의 레이스를 펼쳐가고 있다. 우리를 단절시킨 코로나라는 벽을 그만의 방법으로 조금씩 돌아가며 우리를 잇고 온기를 나누려 한다.
피를 나누고, 대학생에게 후의를 베풀고, 고소를 하고, 체육 공원을 달리는 사소하고 생뚱한 일이 모여 책이 되었다. 작은 일에도 ‘당신이 잘되면 좋겠다’는 선의를 불어넣을 줄 아는 김민섭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마지막 책장까지 훈훈하고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을 탈고한 김민섭은 여전히 어딘가를 뛰고 여전히 헌혈을 하며 당신과의 또 다른 연결을 꿈꾼다. 나, 우리, 당신을 위한 김민섭의 다음 행보가 기대되는 책이다.
나는 이 몰뛰작당이라는, 실체가 없고 누가 함께하고 있는지도 불분명한 모임의 불씨를 잘 간직해 나가려고 한다. ‘쓰는 사람 김민섭’으로서도, 그리고 ‘뛰는 사람 김민섭’으로서도 즐겁게 잘 살아가고 싶다. 그러면 코로나가 끝난 어느 날 누군가가 다가와 곁에 앉을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재미있는 일을 계속하고 있군요. 함께하고 싶어요.” 하고 말할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과 처음 만난 것처럼 함께 뛰고, 다시 만나지 않을 것처럼 작별하고, 다시 또 그렇게 만나고 싶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과 연결의 가능성을 찾아가는 일. 이건 우리가 그동안 ‘연대’라고 불러 온 것보다 느슨한 형태이지만 더욱 단단할 수 있다. 우리를 단단한 쇠사슬로 묶어 내고 바깥을 투쟁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가느다랗고 느슨한 그 선들을 계속해서 확장해 나가는 것이다. 그건 보다 다정한 방식의 연결이면서, 무해한 방식의 연결이다.
함께 저마다의 불씨를 품고 뛰어 준 모든 분들께 감사를 전한다. 나는 목요일 저녁마다 계속 어딘가에서 뛰고 있을 것이다. 어느 목요일에 당신이 잠깐이라도 뛰면서 함께 뛰고 있을 누군가를 감각한다면, 그 순간 우리는 연결될 것이다.
본문 260쪽~2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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