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전자책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KPIPA)의 <2024년 전자책 제작 지원 사업> 선정작입니다.
수많은 지식인의 찬사를 받은 『1913년 세기의 여름』의 11년 만의 후속작
미국, 영국, 프랑스, 스페인, 브라질, 네덜란드, 노르웨이, 러시아, 중국, 체코 등
20개 국가에서 번역 출간
증오와 몰락의 시대를 가로지르는 불꽃같은 사랑의 파노라마
『1913년 세기의 여름』으로 전 세계 지식인들의 열광적인 찬사를 받은 플로리안 일리스의 『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이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전작이 “우리가 현재라고 부르는 시간의 시작점”인 1913년으로 되돌아가 모더니즘의 찬란한 태동을 생동감 있게 보여주었다면, 이번 신작에선 세계사적으로 가장 불행했던 시기라고 할 만한 제1차세계대전 이후부터 제2차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의 10년 동안인 1929년~1939년까지의 기간을 다룬다. 플로리안 일리스는 일기, 편지, 잡지, 신문, 그림, 사진 등 수많은 자료를 바탕으로 베를린 황금기의 끝자락인 이 격동의 10년을 문화사적으로 의미 있는 주요 인물들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풀어냈다. 뉴욕 증시 폭락을 신호탄으로 시작된 대공황과 더불어 나치즘과 파시즘이 부상하고 불안과 증오가 악순환을 이루며 파국으로 치달았던 시대다. 불안정한 정치적 상황 속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는 이는 아무도 없”었고, 끔찍했던 전쟁을 겪은 직후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과거를 떠올리고 싶어하지 않”았던 시대. 사람들은 “그토록 정신없이 현재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예술가들은 열광적인 사랑에 빠졌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헤밍웨이, 스콧 피츠제럴드와 젤다 피츠제럴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와 같은 소설가들부터, 파블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오토 딕스 같은 화가, 한나 아렌트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과 아인슈타인 같은 철학자와 과학자, 마를레네 디트리히나 레니 리펜슈탈과 같은 영화계 인물, 요제프 괴벨스와 콘라트 아데나워와 같은 정치인 등 다채로운 인물들의 개인적인 사랑 이야기가 마치 영화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열정적인 사랑의 시대였으나, 이 시기는 끔찍한 전쟁 이후 증오가 만연하던 몰락의 분위기 때문에 동시에 냉정의 시대이기도 했다. 가히 인류사에서 가장 뜨거운 동시에 가장 차가운 시대라고 할 만하다. 1929년~1939년에는 반표현주의를 표방하는 신즉물주의가 부상했다. 제1차세계대전이 안겨준 충격과 혼란을 직시하고 극복하고자 감정 표현을 억제하고 객관적 실재를 중시했던 신즉물주의는 기술 지상주의, 기계 숭배, 물질 만능주의와 자기 소외를 낳았다. “심장은 그저 근육에 불과하다”고 믿으며 냉정함이 쿨하고 멋져 보인다고 생각하던 시대, 타마라 드 렘피카의 그림처럼, 레니 리펜슈탈의 영화처럼, 마를레네 디트리히의 연기처럼, 루이페르디낭 셀린의 소설처럼 차가운 시대였다.
그래서였을까. 마치 그 대가를 치르듯 이 10년 동안 고조된 냉정과 열정 사이의 긴장은 결국 제2차세계대전으로 폭발하고 만다.
어두운 현실에 예민하게 맞선 예술가들의 사랑과 배신, 환희와 공포의 스펙터클
여러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사랑은 말 그대로 ‘전쟁 같은 사랑’이다. 자유연애를 선언한 사르트르의 끝없는 바람기 때문에 보부아르는 남몰래 괴로워하고,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F. 스콧 피츠제럴드는 아내 젤다가 동성의 연인과 사랑에 빠진 사이 알코올과 사랑에 빠져 있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미쳐버린 젤다는 정신병원을 전전한다. 피카소는 아내 올가를 옆에 두고도 마리테레즈를 새로운 뮤즈로 삼는다. 하이데거를 사랑하면서도 다른 남자와 결혼한 한나 아렌트는 여전히 하이데거를 잊지 못하다가 또 새로운 사랑을 만난다. 시인 고트프리트 벤의 바람기 때문에 그의 애인이 자살하기도 하는데, 그럼에도 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애인의 친구와 새로운 연애를 시작한다. 전설적인 테니스 선수 고트프리트 폰 크람은 결혼한 몸이지만 동성의 애인이 있고, 그의 아내는 남편의 복식 파트너와 애인 사이다. 그러면서도 크람 부부는 서로 사이가 좋다. 작곡가 쿠르트 바일은 바람난 아내를 여전히 사랑하기에 아내가 프랑스 휴양지에서 애인과 카지노를 전전하며 방탕한 생활을 하는 동안 열심히 작곡으로 돈을 벌어 아내에게 보낸다.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망명지마다 애인이 있는데, 모두 브레히트가 자기를 배반한 나쁜 남자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물심양면으로 그를 돕는다. 스탈린의 두번째 아내 나데즈다는 남편이 부정한 일을 저지를 때마다 거침없이 지적하다가 크렘린궁에 벌어진 공산혁명 15주년을 기념한 연회에서 크게 부딪치고, 조용히 방으로 돌아가 권총으로 자살한다. 이쯤 되면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와 베라 부부처럼 서로 사랑하며 다정하게 지내는 경우가 오히려 드물다고 해야 할 정도다.
이성애, 동성애, 양성애, 근친애, 지고지순한 사랑, 이기적인 사랑, 불같은 사랑, 권태로운 사랑 등 모든 종류의 사랑이 적나라하게 펼쳐지는데, 허구가 아니라 사실이라는 점에서 더 짜릿하고 충격적이다. 우리가 대단하다고만 생각했던 인물들의 배신과 기만, 궁색한 변명과 끊임없는 바람기 등을 보고 있자면 말 그대로 입이 쩍 벌어지기도 한다.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요즘 ‘막장 드라마’ 못지않은 그들의 사랑은 정말 ‘광기’라고밖에는 설명이 안 될 지경이다. 상식적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그들의 감정과 행동은, 어두웠던 현실 속에서 그만큼 예민하게 반응했던 자유로운 정신의 발현일지도 모른다. 비난은 할지언정 증오로 단죄하지 않는 그들의 넓은 포용 정신이 그토록 찬란한 예술 세계를 만들어낸 것이다.
잿빛 과거를 생생한 현재의 순간으로 데려다놓는 흥미진진한 시간 여행
로베르트 무질은 “세계의 역사는 적어도 그 절반은 사랑의 역사”라고 말했다. 거대한 사건의 흐름을 통해 대문자 역사로 인류의 여정을 정의하는 거시사로는 결코 알아낼 수 없는, 종종 지극히 개인적이고 그만큼 감상적이라고 폄하되기도 하는 미시사의 중요성을 매우 잘 나타내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나 문화사와 예술사에서는 여러 영역을 넓게 다루는 것보다 한 영역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한 시대의 사람들이 어떤 곳에 살았는지,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옷을 입었는지, 그들이 누구와 만나고 헤어졌는지에 관한 세세한 조사와 분석을 통해 우리는 현재의 우리 자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플로리안 일리스는 마술적 리얼리즘 소설과 같은 문체로 오래전 일어난 일을 마치 지금 막 벌어지고 있는 일처럼 독자들의 눈앞에 생생하게 가져다놓는다. 그의 문장은 한순간 우리를 사르트르와 보부아르가 치즈케이크를 먹던 베를린의 카페 크란츨러의 옆자리로 데려가고, 어느 사이 살바도르 달리와 갈라와 함께 눈부신 해변에 누워 있게 하며, 토마스 만과 카티아와 함께 망명지로 도피하게 만든다. 『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은 이야기의 재미와 역사적 지식 중 어느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이 책에서 다루는 시간 이후 100년의 세월을 향해가는 2024년, 지금 우리의 삶은 그들과 어떻게 다를까. 코로나와 그 이후 시대의 사랑, 여전히 지구촌 한구석에서 전쟁이 벌어지지만 대체적으로 평온하고 지루한 척하는 양극화 시대의 사랑, 이민자와 젠더 갈등을 둘러싼 증오 범죄가 만연한 시대의 사랑, 더이상 멈출 수 없는 자본주의의 총천연색 사랑. 무자비한 전쟁을 겪으며 황폐해진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모두들 무기력해진 느낌이 드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그들의 스펙터클한 삶, 열정적인 사랑을 보노라면 우리 시대에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보일 듯도 하다. 『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은 이토록 흥미진진한 시간 여행으로 우리를 데려가줄 최고의 안내서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