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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의 고리

Description:...

폐허와 상실의 시대를 위로하는 위대한 문학

전세계 작가들이 경의를 표하는 거장

제발트 탄생 75주년 기념 개정판 출간

생전에 단 네권의 소설을 남겼지만 ‘제발디언(Sebaldian)’이라는 용어가 생길 만큼 전세계적으로 수많은 추종자를 양산한 20세기 말 독일문학의 위대한 거장 W. G. 제발트의 대표작인 『토성의 고리』와 『이민자들』이 작가 탄생 75주년을 맞아 새로운 모습으로 독자들을 만난다. 국내에 제발트를 처음으로 소개한 『이민자들』이 출간된 지 11년, 『토성의 고리』가 출간된 지 8년 만이다. 이번 개정판은 한국에도 출간된 『커버』 『책을 읽을 때 우리가 보는 것들』의 저자이자 세계적 북디자이너 피터 멘델선드가 작업한 New Directions판 제발트 시리즈 표지로 선보인다. 본문 전체를 원문과 다시 대조해 전반적으로 표현들을 다듬고 몇몇 오류를 바로잡아 번역의 엄밀성을 높였다. 또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옮긴이주를 보강하고 외국어 고유명사의 표기법도 새로이 손보았다. 특히 『이민자들』의 경우 흐릿했던 사진들의 화질을 개선하고 크기와 배열도 독일어판 원서에 가깝게 실었다. 더욱 정제된 표지와 본문으로 단장한 이번 개정판은 너무 일찍 우리 곁을 떠난 작가를 그리워하는 제발디언들에게는 또 한번의 감동을, 제발트를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는 발견의 기쁨을 선사할 것이다. 『르몽드』의 평처럼 “제발트의 작품을 아직 읽지 않은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다. 진정한 발견의 기쁨을 누릴 기회를 여전히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제발트’라는 우주를 향해

여행을 시작하려는 당신을 위한 최고의 안내서

매혹적인 사유로 진실과 허구를 넘나드는 제발트의 대표작

W. G. 제발트는 “문학의 위대함이 여전히 가능함을 보여주는 몇 안되는 작가”(쑤전 쏜택) “현대 작가 중 신비에 싸인, 가장 숭고한 작가 가운데 한명”(『뉴리퍼블릭 북 리뷰』) “현재 가장 많이 토론되고 있는 독일 작가”(독일어판 위키피디아)로 독일 출신 작가 중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숭배자와 연구자를 거느린 작가일 것이다. 2001년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사망하기까지 그는 몇권의 산문집과 네권의 소설, 세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그밖에도 수많은 에세이와 독일어권 문학을 다룬 탁월하고 논쟁적인 논문들을 발표했는데,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네권의 소설이었다. 제발트의 소설들은 쑤전 쏜택과 J. M. 쿳시, 폴 오스터를 비롯한 여러 작가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먼저 영미권에서 크게 주목받았으며, 현재도 많은 문학비평에서 주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토성의 고리』는 독일어판에 달린 ‘영국 순례’라는 부제처럼, 고대 이스트앵글리아 왕국의 터였던 영국 동남부지방을 여행한 뒤 쓴 문화고고학적 여행기 같은 작품으로 그의 세번째 소설이다. “인류의 역사소설”(『월스트리트 저널』) “먼 거리를 이동하는 정신적 여행을 기록한 작품 중 최고”(『타임스 리터러리 써플리먼트』)라는 찬사를 받은 이 작품에서 제발트는 가슴을 죄어오는 진지한 비가의 어조로 문화와 문명, 자연과 인간의 역사를 종횡무진 넘나들며 심원하고 냉철한 성찰을 보여준다.

파괴된 문명의 흔적을 따라가는 순례자의 여정

제발트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토성의 고리』에도 사실과 허구가 교묘히 섞여 있어 그 경계가 분명치 않으며 소설 속 화자 또한 여러모로 제발트 자신과 겹친다. 1992년 8월 소설의 화자는 고대왕국이 있던 영국의 동남부지방(노퍽주와 써퍽주)을 여행한다. 이 순례의 발단은 화자 자신의 내면적 공허였지만 목적의식 없는 여정은 자주 샛길과 미로로 접어들고 어긋난다. 그러나 이런 이탈 덕택에 화자는 이미 발생했거나 장차 도래할 대재앙의 숱한 증인을 만나게 된다. 제국주의의 광기가 남겨놓은 방랑하는 유대인이나 노예화된 민족, 문명의 흐름에서 비켜난 삶을 살아간 아웃사이더 등의 인간집단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의 열기가 남겨놓은 폐허의 상징들—파괴된 숲, 청어와 누에처럼 산업적으로 희생된 생물, 버려진 공장, 몰락한 도시—을 마주하며 화자는 “미래의 어떤 대재앙으로 파멸한 문명의 잔해”를 보는 듯한 먹먹한 전율을 느낀다.

폐허에 가까이 갈수록 망자들의 신비로운 섬에 와 있다는 생각은 점점 사라졌고, 그 대신 미래의 어떤 대재앙으로 파멸한 우리 자신의 문명의 잔해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 사회의 본성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우리가 남겨놓은 금속과 기계의 쓰레기더미 사이를 돌아다니는 미래의 이방인처럼 나 또한 도대체 어떤 존재들이 여기서 살고 일했는지 (…) 이해할 수 없었다.(278면)

파괴되어버린 과거의 잔존물들은 끝없이 이어지고, 이런 여정이 계속될수록 화자는 “한 시대 전체가 끝나는 건 한순간의 일이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어느 곳을 가더라도 마치 “신의 거대한 도시에 있는 [지구라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 것처럼 느꼈던 화자는 애수와 우울을 관통하며 급기야 몸의 마비까지 겪는다.

이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역사를 희생자들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선이다. 이미 청소년시절에 전쟁과 유대인 학살에 대한 부모 세대의 침묵에 분노했던 제발트는 작품을 통해 역사 속의 고통과 파괴를 다가올 미래를 위한 불가피한 희생으로 간주하는 일체의 담론에 근원적인 이의를 제기하며 전체의 미래를 위해 내세워지는 낙관론의 폭력성을 고발한다. 역사 속의 파괴와 고통은 어떤 약속으로도 보상될 수 없고 인간 문명의 역사는 지속적으로 진행되는 대재앙이라는 것이다.

고등식물의 목탄화, 모든 가연성 물질의 지속적인 연소는 지구상에서 우리 인간을 확산시키는 동력이다. 최초의 유리등에서 18세기의 칸델라(휴대용 석유등의 일종)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칸델라의 불빛에서 벨기에 고속도로를 비추는 아크등의 창백한 빛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연소이며, 연소는 우리가 만들어낸 모든 사물의 내적 원리다. (…) 우리가 고안해낸 기계들은 우리의 신체나 우리의 동경처럼 서서히 작열하는 심장을 갖고 있다. 인간 문명 전체는 애당초부터 매시간 더 강렬해지는 불꽃일 뿐이었으며, 이 불꽃이 어느정도까지 더 강렬해질 수 있을지, 그리고 언제 서서히 사그라질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199~200면)

글로 그려낸 아름답고 애잔한 역사화

우리에게 기약된 미래가 없다는 통찰을 화자에게 안겨준 몰락의 현장들은 지상 모든 것의 덧없음을 보여준다. 『토성의 고리』에는 화자 혹은 작가 자신의 영혼의 동지라고 할 만한 17세기 인물 토머스 브라운과 1658년에 그가 출판한 『유골단지』(Hydriotaphia)라는 책이 주요하게 등장한다. 이 책은 당시에 노퍽 근처의 들판에서 발견된 단지에 남아 있는 화장(火葬)의 잔해들을 꼼꼼히 관찰한 기록으로 브라운은 “세월의 흐름을 이겨낸 이런 물건들이 인간 영혼의 불멸성을 상징한다고 여겼”다. 예로부터 해골과 모래시계는 ‘덧없음’(Vanitas)을 상징하는데, 화자가 유골에 관심이 많았던 토머스 브라운의 유골을 추척하는 것은 덧없음이 이 작품의 핵심적인 주제임을 드러낸다.

‘토성의 고리’라는 제목도 마찬가지다. 서양에서 토성은 멜랑꼴리와 시간을 상징하는 천체이다. 시간은 덧없음을 깨닫게 하며 이 덧없음이 낳은 정조가 멜랑꼴리다. 제발트가 서두에 인용한 글에서도 볼 수 있듯 토성을 공전하고 있는 것은 토성의 기조력으로 인해 파괴된 달의 잔해들이며, 따라서 그 고리는 시간의 힘에 의해 파괴된 파편들로 이루어져 있다. 파괴의 불가항력적인 성질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그 폐허의 고리는 인간을 비롯해 지구의 어떤 것도 몰락의 운명을 피할 수 없으며 토성의 고리처럼 파괴된 잔해로 지구상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보여준다.

때때로 우리는 이 지구에서 사는 데 결코 적응할 수 없는 종류의 인간들이고, 삶이란 끝없이 진행되는, 이해할 수 없는 거대한 실수라는 생각이 듭니다.(259면)

하지만 화자의 우울은 결코 희미하고 피상적인 감상이나 무기력한 냉소로 빠지지 않는다. 제발트는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시각과 엄격한 자세로 현실을 성찰해나간다. “파멸을 이겨낸 것들에서 비밀스런 환생능력의 흔적을 찾고자” 한 토머스 브라운이 파멸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환생하는 애벌레와 나방의 능력에 매료된 것처럼 화자의 눈에 누에의 변태(變態)는 덧없음과 우울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인간의 갈망처럼 보인다. ‘텍스트’(text)라는 말이 ‘섬유’를 뜻하는 라틴어 textus에서 유래되었듯이 제발트는 누에가 실을 잣듯 글쓰기를 통해 사물을 시간의 흐름에서 구원해내고자 한다. “난국들로만 이루어진 우리의 역사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면서 역사의 과정에서 파괴된 채 잊혀가는 것들을 복원해내고 우리 앞에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 제발트가 이 작품을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소명이다.

이 시대의 성찰을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정전(正典)

총 10장으로 구성된 『토성의 고리』는 제발트의 전작들처럼 사진이 삽입되어 있다. 작가 본인이 직접 모은 이 사진들은 현실과 허구를 넘나드는 제발트의 글에 사실성을 강조해준다. 하지만 작가가 풀어놓는 이야기가 어디까지 역사적 사실이고 어디부터 허구인지 면밀히 알기는 어렵다. 다만 제발트는 현실과 허구, 문학과 자전적인 글, 실제 사진과 허구의 사진, 실제 인물과 허구 인물을 뒤섞어놓아 작품 전체에 존재론적인 불안을 부여하면서 역사적 지식을 구성하는 지각의 틀 자체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자 한다.

지금은 해양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선원 열람실에서 발견한 제1차세계대전 화보집의 사진들에서 촉발되어 70만명의 남자와 여자, 아이가 소름끼칠 정도로 잔인하게 살해된 야세노바츠 수용소와 우스타샤 수용소에 대한 문서를 추적하고 기록한 과정을 담은 4장의 글과 사진에서 우리는 전쟁과 대학살의 흔적에 가시지 않는 섬뜩한 전율을 느낀다.

목숨이 붙어 있던 아이들 중 많은 아이는 배가 고픈 나머지 목에 걸고 있던, 개인정보가 적힌 마분지 판을 씹어 먹었으니, 결국 극도의 절망 속에서 그렇게 자신의 이름을 지워버렸던 것이다. (…) 그들의 마음속에서 어떤 기억의 그림자들이 여전히 계속 배회하고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120~21면)

1916년 런던의 감옥에서 반역죄로 처형당한 로저 케이스먼트는 당시 유럽의 제국들이 열을 올리던 아프리카 식민지사업의 가혹함을 고발한 사람이었다. 조지프 콘래드가 “타락해가는 유럽인들 가운데 오직 그만을 올곧은 사람으로 여겼다”고 알려진 케이스먼트의 이야기를 다룬 5장에서는 케이스먼트가 처형당하기까지의 과정과 함께 콘래드의 유년시절, 부모를 잃고 선원이 되어 항해를 다니던 중 로스토프트에 머물렀던 몇달간의 생활, 그의 작품 『어둠의 심연』의 배경이 된 콩고 생활도 상세히 소개한다.

6장에서는 원래 중국 황제에게 납품할 목적으로 제작되었으나 영국동부철도의 지선에 투입된 철도 차량의 흔적을 추적하며 서태후를 둘러싼 중국의 19세기 후반 역사를 흥미롭게 서술함과 동시에 더니치에 머물던 문인 앨저넌 스윈번과 와츠 던턴의 생활을 소개하며 중세 유럽에서 중요한 항구로 꼽히던 더니치의 과거와 몇차례 재앙과 개발로 폐허가 되어버린 오늘날의 모습이 교차된다.

8장은 600년 이상 아일랜드에 거주하다 영국의 써퍽으로 이주한 피츠제럴드 가문의 역사와 아일랜드의 구석진 곳에서 외떨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는 애슈버리 가문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1940년대 초 군사연구소들이 수많은 비밀 프로젝트를 시험한 주요 지역이었으나 지금은 가장 낙후된 곳이 되어버린 오퍼드 해안지역 이야기를 다룬다. 10장에서는 동로마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지배하던 시절 페르시아 수도사 두명이 누에알을 대나무관에 숨겨 중국에서 비밀리에 가져온 이래 마치 민족사업처럼 반강제적으로 그리스, 이딸리아, 프랑스, 영국 등 유럽 전역으로 퍼진 양잠업의 흥망성쇠를 훑고 지금은 몰락한, 산업혁명 시기 영국의 비단 제조공장과 그 직조공들의 애환을 담담히 서술하고 있다.

각 장마다 해당 지역의 인물과 사건, 사물에 얽힌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냉철하고 차분하게 직시하는 이 작품은 한장의 사진보다 더 강렬하고 오래 남을 풍경을 선사한다. 『토성의 고리』는 파괴가 일상이 된 이 시대를 성찰하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정전(正典)이라 할 수 있다.

‖ 차례

1장

병원에서 - 조사(弔詞) - 토머스 브라운 두개골의 표류 - 해부학 강의 - 공중부양 - 다섯눈모양 - 상상의 존재들 - 유골단지

2장

디젤기관차 - 모턴 피토의 궁전 - 써머레이턴 방문 - 불길에 휩싸인 독일 도시들 - 로스토프트의 몰락 – 칸니트페르스탄 - 과거의 해수욕장 - 프레더릭 패라와 제임스 2세

3장

해변의 낚시꾼들 - 청어의 자연사(自然史)에 대하여 - 조지 윈덤 르 스트레인지 - 커다란 돼지 무리 - 인간의 이중화 - 오르비스 떼르띠우스

4장

쏠 베이 전투 - 밤의 도래 - 덴하흐의 스타티온스베흐 – 마우리츠하위스 - 스헤베닝언 - 성 제발트의 묘지 - 스히폴 공항 - 인간의 불가시성 - 선원 열람실 - 제1차세계대전의 사진들 - 사바강 근처의 야세노바츠 수용소

5장

콘래드와 케이스먼트 - 소년 테오도르 - 볼로그다에서의 망명생활 - 노보파스또프 - 아폴로 코르제니오프스키의 죽음과 매장 - 바다생활과 애정생활 - 겨울의 귀향 - 어둠의 심연 - 워털루의 파노라마 - 케이스먼트, 노예경제 그리고 아일랜드 문제 - 반역 재판과 처형

6장

블라이드강 위의 다리 - 중국 궁정을 위한 기차 - 태평천국의 난과 중국의 개방 - 원명원의 파괴 - 함풍제의 최후 - 서태후 - 권력의 비밀 - 침몰한 도시 - 가엾은 앨저넌 스윈번

7장

더니치의 들판 - 미들턴의 마시 에이커스 - 베를린의 유년시절 - 영국으로의 망명 - 꿈, 동질성, 편지 - 두가지 기이한 이야기 - 열대림을 거쳐

8장

설탕에 대한 대화 - 불지 공원 - 피츠제럴드 가문 - 브레드필드 유년시절의 방 - 에드워드 피츠제럴드의 문학적 소요 - 마술 그림자 쇼 - 친구를 잃다 - 한해의 끝자락 - 마지막 여행, 여름 풍경, 행복의 눈물 - 도미노 한판 - 아일랜드에 대한 기억 - 내전의 역사에 대하여 - 방화, 가난 그리고 와해 - 씨에나의 까따리나 - 꿩 숭배와 기업가 정신 - 황야를 거쳐 - 비밀 파괴무기들 - 다른 땅에서

9장

예루살렘 성전 - 샬럿 아이브스와 샤또브리앙 자작 - 무덤 저편의 회상록 - 디칭엄의 교회묘지 - 디칭엄 공원 - 1987년 10월 16일의 폭풍

10장

토머스 브라운의 봉인된 박물관 - 누에나방 - 양잠업의 기원과 확산 - 노리치의 비단 직조공들 - 직조공들의 마음의 병 - 견본철: 자연과 인공 - 독일의 양잠업 - 죽이기 작업 - 슬픔의 비단

옮긴이의 말

‖ 추천사

나는 제발트를 처음으로 알게 된 날의 풍경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날 나는 한 제발디언(Sebaldian)으로부터 책을 한권 선물받았다. 여전히 구름층이 두껍고 무겁게 드리워진 11월의 하늘 아래 응급환자수송차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무섭게 귀를 찢는 사이렌을 울리며 베를린 중심가를 빠른 속도로 질주했으며, 사각형의 건물들은 모르는 사람처럼 차갑게 우울하고, 애타게 기다리는 소식은 그 어느 방향에서도 들려오지 않았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정처 없이 앉아 있는 까페테라스. 십년 전에도, 그리고 십년 후에도. 불안을 유발하는, 혹은 문학을 유발하는 어떤 장소들 중의 하나에 내가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홀로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도중 나는 은밀하고 남모르는 개인적인 위안이 현기증처럼 엄습했다가 사라지는 것을 경험했다. 설명할 수 없는 위안. 그런데 나는 오늘, 무엇을 만났던/읽었던 것일까! 그리고 점차 번갯불처럼 명료하게 형체를 드러내는 사실—나는 제발트를 읽었다. 그 이후에도 하루들은 달라지지 않았다. 변한 것은 단 한가지, 제발트 이전과 제발트 이후가 있을 뿐._배수아(소설가)

무척 아름다우면서도 낯설다, 영원히 이어지길 바라는 꿈처럼._『뉴욕 타임스』

한껏 고양되어서, 누군가는 최면에 빠져서, 읽는 재미가 있다. 이보다 더 낯선 작품, 더 강렬한 작품은 상상하기 힘들다._『런던 옵서버』

흠잡을 데 없는 작품. W. G. 제발트는 거의 환각처럼 고양되는 지각능력을 가졌다._『슈피겔』

‖ 옮긴이의 말

자신의 지능이 발휘하는 힘을 제어하지 못하고 그 힘에 매료된 채 몰락을 재촉하는 인간의 문명에 대한 위기의식이 커져가고 있는 지금, 이 문명의 폐허들을 차분히 훑어가면서 어떠한 손쉬운 구원의 전망도 제시해주지 않는 제발트의 작품은 이 시대에 대한 구체적 성찰을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정전(正典)이다.—이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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