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만에 나온 애덤 스미스의 삶에 대한 보물 창고
사상의 발생과 전파에 관한 매우 지적인 전기이자 명쾌한 문체
스미스와 동료들의 삶을 해명하는 모든 원천을 추적하다
『애덤 스미스 평전』은 1895년 존 레이가 출간한 평전 이후 100년 만에 쓰인 애덤 스미스에 대한 본격적인 평전이다. 이언 로스는 스미스의 가족, 스승, 친구와 동료들을 세밀하게 그리고 있어 그의 생애와 시대에 대한 설명에서는 향후 수십 년 동안 이 평전을 뛰어넘을 기록은 나올 수 없다고 평가받고 있다.
이 책은 저자가 다음의 두 가지를 동시에 추구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첫째, 스미스의 생애를 연도별로 따라가면서 그에 대해 기존에 알려진 관찰들을 실제 사건과 연결시키고 있다(예컨대 스미스가 옥스퍼드에 갈 때 저자 로스는 대학에 대한 『국부론』의 비판을 인용하고, 스미스가 툴루즈의 정치에 대해 이야기할 때 로스는 이를 『도덕감정론』과 연결시킨다). 저자는 사건과 주장의 인과관계에 매우 조심하면서도 자신의 논평을 제시함으로써 평전 작가의 자신감을 보여준다. 이는 그가 자기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서신과 사건들을 거의 다 수집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둘째, 개정판(한국어판은 개정판을 번역했다)에서는 특히 자신이 구성한 스미스의 내러티브에 개념적 분석과 해석적 주장을 포함시켰다. 본문 단락 중 괄호나 주석이 없는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 책이 지적이고 학술적인 평전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게다가 저자는 스미스의 생애에 대한 백과사전적 서술을 지향하면서 생애에 관한 새로운 사실과 학설을 포함시켜 훨씬 더 촘촘하고 정밀한 서사를 구축했다.
삶은 중요한 요소다. 한 학자의 담론과 사상은 그의 삶과 인간관계 속에서 살펴볼 때 맥락화가 더 잘 되기 때문이다. 로스가 스미스를 단순히 학자가 아닌 ‘인물’로 만들기 위해 뉘앙스들을 살리고 서신 자료로 긴밀했던 인간관계를 복원시키는 이유다.
인간 본성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탐구자
우울과 해악을 예감하는 마음의 소지자
이 평전은 인간 스미스의 초상을 부드럽게 그린다. 학생뿐 아니라 도덕철학자, 수사학자, 역사가, 교사, 관세 위원, 그리고 경제학자로서의 스미스를 볼 수 있다. 스미스의 인간적인 특징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겸손함’이다. 때로 자기비하적인 면도 있었지만 자신감이 넘쳤고, 타인에게 무심하다가도 자선가의 면모를 보이며, 건강염려증이 심하면서도 건강을 해칠 정도로 학문에 전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학생 시절부터 신경쇠약을 앓았던 그가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어머니에게 깊은 헌신을 보이고, 개인적으로 이루지 못한 한두 번의 사랑을 다루는 등 스미스 삶의 여러 세부 풍경도 묘사한다.
스미스에게 가장 중요한 인물은 스승 프랜시스 허치슨, 친구 데이비드 흄, 경제 이론가이자 의사인 프랑수아 케네로 평전에서 비중 있게 다뤄진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흄을 ‘단연코 당대의 가장 뛰어난 철학자이자 역사가’라고 일컬었고 둘의 우정은 말년까지 지속됐다. 다만 19세기까지 학계에서 스미스는 현대적 담론에 등장하지 않고 흄의 각주처럼만 다뤄졌는데, 저자는 스미스가 당대의 담론에 완전히 통합된 철학자이자 대화 상대자들로부터 찬사를 받았음을 보여준다.
스미스는 인간 본성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탐구자였고, 탄탄한 지성을 갖추고 있었으며, 다른 한편 계몽주의의 낙관을 누그러뜨리는 성정인 ‘우울과 해악을 예감하는 마음’도 갖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상업과 제조업 중심 사회의 초기 단계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과 남들에게 정의가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을지 설명하기 위해 인간의 상상력에 주의를 기울였다.
이런 점에서 『도덕감정론』은 눈길을 사로잡는다. 스미스가 자신의 『국부론』보다 더 우수하다고 여겼던 『도덕감정론』에서는 편파적 감정인 ‘열정’을 억누르고 타인의 안녕을 염려하는 ‘공감’에 주의를 기울이게 함으로써 인간의 본질적 이기심을 이론화했던 루소와 같은 이들에게 정면으로 반박한다. 스미스는 공정한 관찰자 개념을 발전시켜, 타인이 우리와 똑같이 느끼도록 강요하기보다 관찰자들이 도달할 만한 수준으로 우리 감정의 음조를 조정한다(저자는 『도덕감정론』의 여러 판본을 따라가면서 ‘공정한 관찰자’가 어떻게 발전되는지 살펴본다). 동시에 스미스는 정반대의 주장도 내놓는데, 관찰자들이 감정에 사로잡힌 이들과 더욱 동일시하려고 애쓸 거라면서 감정 과잉의 음조를 누그러뜨리는 한편 감정 반응을 깊게 가져가게 함으로써 ‘자제’와 ‘이타심’이라는 덕목을 한꺼번에 강조한다. 주의할 감정은 자기기만이고, 타인의 시각으로 자신을 본다면 우리는 개혁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게 스미스의 주장이다. “인류의 치명적 약점인 자기기만은 인류의 장애 절반의 근원이다.”
스미스의 관찰자는 연극적 차원을 지닌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인간 삶의 모습을 관찰하는 데서 도덕적 교훈이 생겨난다는 그의 핵심 견해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스미스는 큰 상처들이 고통받는 자의 가슴속에 불러일으키는 쉬운 분노가 아니라, 그 상처들이 공정한 관찰자들에게 자연스럽게 일으키는 고결한 분노를 암시한다. 그의 도덕의 극장에서는 이론가와 일반인 모두 관객이면서 배우이고, 공감과 상상에 기초한 타인에 대한 그들의 판단은 그들 자신의 윤리적 삶의 일부가 된다.
스타일리스트이자 느리게 쓰는 사람
저자는 이어서 『국부론』에 대해 해설한다. 『국부론』을 낳은 것은 스미스의 광범위한 연구, 인간 본성에 대한 관찰, 영국과 프랑스 및 스위스의 경제 활동에 대한 지식, 각계각층 사람들과의 대화, 당대 저자들과의 대화, 그리고 『도덕감정론』 집필 경험이었다. 이 걸출한 저작은 2부 5권으로 이루어졌다. 첫 두 권은 상업사회의 경제 성장을 자연스럽게 이끄는 원칙들을 보여주고, 뒤의 세 권은 성장을 이루기 위해 입법자들이 한 일과 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지에 집중한다.
『국부론』은 『도덕감정론』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스미스는 경제 활동이 자기애가 발휘되는 신체와 정신의 미묘함에 뿌리를 둔다고 여겨 최종적인 경제 분석에서 인간을 욕구의 존재보다는 심미적 존재에 훨씬 더 가깝게 묘사한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도덕감정론』이 『국부론』의 그림자에 가려지게 두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부론』은 흔히 마르크스의 『자본』과 견주어지는데, 저자는 “스미스는 상업과 제조업 중심 사회를 마르크스보다 더 깊이 꿰뚫어보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마르크스 혁명은 전반적으로 실패했지만, 자유 시장 요소들을 갖춘 사회에서의 교육은 삶을 육체적·정신적으로 꽤 괜찮은 것으로 만들어주면서 작은 승리나마 거두었기 때문이다.
이언 로스는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스미스도 깊게 보여준다. 스미스가 심혈을 기울인 것은 문체다. 그는 간명한 문체를 선호했으며, 전범으로 삼은 작가는 스위프트였다. 반면 알레고리와 메타포를 과하게 쓰는 섀프츠베리의 문체는 지양했다(또한 자연스럽고 소박한 언어라고 불리는 편안한 문체도 싫어했다). 스미스의 작법 연습은 이랬다. 프랑스어 텍스트를 번역하면서 문장 쓰기의 기술을 익히는 것인데, 가장 아름다운 문장들을 번역하는 것이 취향 형성의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거기서는 내가 옮기는 작가의 수준 높은 상상이나 사고방식, 글쓰기 방식을 배울 수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스미스는 최고의 수사학자가 되었고, 간결하고 정확한 언어를 구사하게 됐으며, 나아가 후기작인 『국부론』의 문체는 특히 더 간명하게 힘 있어졌다. 그는 비유가 꼭 알맞고 자연스러운 표현 형식이 될 때만 도입했는데, ‘보이지 않는 손’이 대표적인 예다. 저자는 스미스가 스위프트의 간명한 문체를 옹호한 것이 적절했다고 본다. 당시에는 스코틀랜드의 새로운 철학 운동의 여파로 섀프츠베리의 영향을 받은 장황한 글쓰기가 과도하게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스미스는 감정을 나타내는 비유적 표현의 자연스러운 사용에서 공감의 메커니즘이 역할을 한다고 봤다는 점에서 진정 통찰력을 갖고 있었다. 이 점은 그가 윤리학에서 공감의 메커니즘에 할당한 역할을 예고하는 중요한 부분이었다. 이런 식으로 수사학을 새롭게 하는 것에 더하여, 그는 시학과 변증법을 포함하도록 수사학의 범위를 넓혔다.
작가로서의 스미스는 신중하고 느리게 작업하는 사람이었다. 이미 발간한 책으로 끊임없이 되돌아가 자신의 도덕 체계에 대한 반론을 없애고자 수정과 추가 작업을 해 개정판을 펴냈다. ‘이 일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시간과 생각을 잡아먹는’ 것이어서 스미스는 괴로움을 토로하지만, 자신의 건강 대부분을 바쳐 『도덕감정론』 제6판을 준비했고, 『국부론』도 제3판까지 작업했다. 이것을 비판하는 학자도 있는데, 오히려 『국부론』을 더 파고들어 ‘자기애’의 역할을 수정해야 했고, 소비자-생산자 세계에서 이 감정에 뒤따르는 탐욕과 파괴성을 완화하려 애썼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스미스는 늘 자신을 윤리학자로 여겼고, 『국부론』이 출간되기 전 17년 동안 『도덕감정론』의 발행 부수로 확고한 저자의 입지를 구축했던 터라 이 책에 더 큰 애정이 있었을 것이다.
애덤 스미스 평전 출간의 연대기
스미스에 관한 최초의 전기는 스미스의 동시대 인물인 더걸드 스튜어트가 1795년에 출판한 것이다. 그는 스미스와 잘 알고 지낸 에든버러대학의 수학 교수이자 도덕철학 교수였다. 그 후 1895년 존 레이가 『애덤 스미스의 생애』를 출간했고, (1937년 윌리엄 스콧이 쓴 『학생과 교수로서의 애덤 스미스』가 있긴 하나) 정확히 100년 뒤인 1995년 이언 로스가 『애덤 스미스 평전』을 펴냈다. 로스는 체코, 프랑스, 그리고 영국 전역의 문서들을 참조했다. 또 룩셈부르크, 스위스, 미국 등에서 네 개 언어로 된 44편의 18세기 신문과 정기간행물을 참고했고, 새로운 서신을 발굴했으며, 방대한 2차 자료들을 참조했다.
이번에 번역된 판본은 2010년에 낸 제2판이다. 개정판 출간이 이뤄지기까지 15년 동안 스미스 연구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로스도 이 연구에 동참했는데, 새로운 세대의 학자들은 이 스코틀랜드 철학자를 부활시키면서 기록보관소와 다락방, 필사본과 서신을 샅샅이 뒤져 세부 자료들을 발굴해냈다. 이것들을 반영한 제2판은 훨씬 더 상세하고 확장된 데다 더 분명한 내용을 담고 있다.
스미스는 죽기 전 자신의 미발표 논문과 사적인 논문을 파기하라고 지시했고, 그에 따라 자료들이 소각되었다. 그렇지만 1896년 옥스퍼드와 1953년 애버딘에서 스미스 제자들의 강의 노트와 편지들이 발견되는 등 새롭게 연구할 만한 것들이 나타났다. 향후 미공개 자료가 발견될 가능성은 점점 더 희박해지고 있지만, 어쨌든 희귀 자료로 작업하는 것은 연구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다. 현재까지의 자료를 거의 다 섭렵한 이언 로스의 이 평전은 스미스에 대한 다른 모든 전기를 판단하는 준거로 작용하며, 스미스의 생애와 저작의 세부 사항 및 주제에 대해 학문적 권위를 갖는 것으로 인정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