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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日記

Description:...

우리가 손꼽아 기다려온 황정은의 첫 에세이집

일상의 기록으로 다다른 내일의 안녕

반짝이는 문장으로 담아낸 우리의 나날들

이름만으로 독자를 설레게 하는 작가, 지금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작가 황정은의 첫번째 에세이집이 출간되었다. 작가는 만해문학상 수상소감(2019년)에서 소설을 쓰기 위해 “메일 답신을 쓰는 데 사용하는 문장도 아껴야 한다”고 밝힌 바 있을 정도로 소설 이외의 글을 발표하는 일이 드물었다. 거기다 베일에 싸인 작가의 실제 생활을 조금이라도 볼 수 있다는 데서 이번 출간은 이미 공고한 황정은의 팬덤뿐만 아니라 수많은 독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책에는 코로나19 거리두기 생활 속에도 피어나는 정원의 꽃들, 어린 조카가 그리고 간 낙서의 비밀을 탐구하는 작가의 모습 등 일상에서 길어 올린 에피소드부터 아동학대 사망사건, 목포항에서 본 세월호 등 사회에 질문을 던지는 두터운 상념까지 황정은의 마음 속 지도가 폭넓게 그려져 있다. 창비가 새롭게 선보이는 ‘에세이&’ 시리즈의 첫 책이라는 점에서도 이번 출간의 의미는 남다르다. 에세이&은 ‘일상과 세계 사이에서 빛나는 이야기’들을 통해 현실과 호흡하고 동시대 독자들과 마음을 나누는 에세이 시리즈로 꾸준히 행보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사랑이 내게 있으니,

사는 동안엔 내가 그것을 잃지 않기를”

어느 날의 일상이 펼쳐내는 감동과 환희

『일기日記』의 첫장인 「일기日記」와 그다음 장인 「일년一年」은 파주로 이사한 작가의 일상에 코로나19가 들어오면서 생겨난 이야기다. 원고노동자로서 몸을 관리하는 법, 동거인을 마중 나가는 길 등 많은 것이 달라진 이후 작가는 집앞 공터인 ‘반달터’를 지켜보는 일이 잦아졌다. 계절이 바뀌며 반달터는 식물이 자라는 농장으로, 아이들이 눈을 굴리는 놀이터로 그 역할을 달리해간다. 반달터의 일년을 바라보는 일은 우주를 상상하는 일로 이어지는데, 그 거대한 시간 앞에서 작가는 ‘명命을 지닌 존재들의’ 안녕을 빈다.

「책과 책꽂이 이야기를 쓰려고 했지만」과 「민요상 책꽂이」에는 작가의 어린 조카들이 등장한다. 작가가 지닌 ‘파도’라는 최초의 기억과 조카를 바다에 처음 데려간 이야기, 이사하면서 책이 뒤섞여버린 책꽂이에 조카가 새겨놓은 ‘민요상’이라는 이름 등 귀여움이 가득한 에피소드 사이사이 차별과 혐오에 관한 작가의 생각이 솜씨 있게 스며 있다. 이는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다』에서 작가의 ‘최애’ 애니메이션인 「빨강머리 앤」에 대한 사랑이 학대당하는 어린이에 대한 서늘한 이야기로 반전되는 것과 겹쳐지며 독자의 가슴을 때린다.

황정은은 세월호에 관한 발언을 꾸준히 이어온 작가로 유명한데, 「목포행木浦行」은 2017년 이후 매년 목포신항을 방문하는 작가의 이야기다. 세월호는 황정은에게 무엇이고, 우리에게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주장이나 웅변 없이 작가의 경험으로 들려준다. 「산보」는 작가가 돌보는 화분들과 걷기에 관한 이야기다. 원고를 쓰기 위해 필요한 몸과 마음은 어떻게 단련되는지, 그리고 실제로 황정은은 어떤 길을 걸으며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한 독자에게 특히 반가운 장이다.

작가는 이번 책을 묶으며 “쿠키를 먹는 것처럼 읽을 수 있는 일기를 목적하고 썼다”(161면)고 밝혔다. 「쿠키 일기」라는 이름이 붙은 이 장은 그 생각을 갖게 된 이유에 관한 글이다. 중간에는 작가가 ‘추천사’를 쓰지 않는 이유와 그럼에도 쓸 수밖에 없었던 경우가 등장하는데, 황정은의 팬덤이 품고 있던 오랜 비밀 한가지가 밝혀지는 순간이다. 「고사리를 말리려고」와 「흔痕」에는 작가의 과거가 담겨 있다. 오래 전 작가가 겪은 폭력에 관한 이야기는 독자의 마음을 무겁게 누르면서도 그 안에서 위로와 감동이 탄생하는 기이한 순간을 경험하게 한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지금 독자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치유의 문장들

“사랑이 천성”(134면)인 작가는 무엇보다 사랑을 많이 녹여내려 애썼다. 작가는 “자주 바란다고 말하고 믿는다고 말한다.”(160면) 또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그 마음들을 나도 사랑합니다”(작가의 말)라고 전한다. 작가가 책 중간 중간에 여러번 발신하는 “건강하시기를”(8면) 같은 안부의 메시지에서 듬뿍 느껴지는 진심도 이러한 사랑 덕분일 것이다. 그리고 사랑을 담아 건네는 질문은 깊은 울림을 담은 메아리처럼 여러번 돌아와 가슴에 남는다.

『일기日記』는 창비의 독서 체험 플랫폼 ‘스위치’(switch.changbi.com) 연재 당시부터 독자들의 뜨거운 성원을 얻었는데, 이는 스위치 회원을 위한 ‘스위치 에디션’ 발매와 그에 대한 폭발적인 호응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호응의 원인은 황정은이 첫 에세이집을 출간했다는 사실 그 자체와 더불어 여기에 담긴 일상이 시기가 지나면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할 질문들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일기日記』는 책장을 덮는 순간 독자의 마음속에 삶의 모습에 관한 일기 한편씩을 탄생시키는 경이로운 독서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책 속으로

건강하시기를.

오랫동안 이 말을 마지막 인사로 써왔다. 불완전하고 모호하고 순진한 데다 공평하지 않은 말이라는 것을 알지만, 늘 마음을 담아 썼다. 당신이 내내 건강하기를 바랐다. 지금도 당신의 건강, 그걸 바라고 있습니다. 건강하십시오. 우리가 각자 건강해서, 또 봅시다. 언제고 어디에서든 다시.

―「일기日記」 부분

내게 가장 오랜 기억은 말이다.

파도를 기다려.

―「책과 책꽂이 이야기를 쓰려고 했지만」 부분

연필을 쥐고 돌아다니던 조카가 해둔 낙서를 조카가 다녀간 지 한달 만에 발견했다. 작년 이맘때 일이다. 소나무 책꽂이에 민요상이라는 이름을 적어두었다. 민요상.

민요상이 누구지?

갓 네살 된 조카가 완성된 형태로 글자를 쓸 수 있으며 그것이 자기 것도 아닌 다른 누군가의 이름이라는 게 놀랍고 신기했다. 민요상, 그가 누구냐며 어른들끼리 궁금해했다. 지울 수 없어 그 이름을 그대로 두고 먼지만 닦으며 지내다보니 흑연이 목재에 배어들어 글자가 번졌다.

―「민요상 책꽂이」

그래도 나는 자주 바란다고 말하고 믿는다고 말한다. 예컨대 당신의 건강을 바라고 사람의 선의를 믿고 굳이 희망하는 마음을 나는 믿는다. 믿어 의심치 않겠다는 믿음 말고, 희구하며 그쪽으로 움직이려는 믿음이 아직 내게 있다. 다시 말해 사랑이 내게 있으니, 사는 동안엔 내가 그것을 잃지 않기를.

천둥 사이에 빌고.

―「고사리를 말리려고」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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