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이 말소된 페이지 (개정판)
손아람 장편소설
Description:... 내가 가진 건 재능일까, 열정일까 성공에 필요한 건 실력일까, 행운일까 음악에 대한 열정과 성공을 향한 야심을 품고 빈 주머니로 버티던 스무 살. 솔직한 음악으로 대중을 사로잡겠다는 포부 하나로 손 전도사, 오 박사, sid가 힙합 그룹 진말페로 뭉쳤다! 기적처럼 만나게 된 조PD와 DJ Uzi 그리고 소울트레인 형제들. 그들과 함께 무대를 휩쓸던 어느 날, 우여곡절 끝에 찾아온 기회. 청춘들의 꿈 앞에 야욕을 드러내는 음반 제작사들의 횡포가 난무하는 가운데, 이들은 무사히 데뷔해 세상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나는 별자리에만 전설이 얽혀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광활한 빈 공간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지점마다 희미한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안다. 내 젊음이 바로 그 어두운 구석에 박제된 이야기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_본문 중에서 한국 힙합 태동기, 언더그라운드 힙합신의 전설 10년 만에 다시 만나는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의 자전적 이야기 손아람 작가의 2008년 첫 장편소설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의 개정판이 출간됐다. 이 소설은 작가의 자전적 성장소설이자 실제 사건에 허구를 가미한 팩션(Fact + Fiction)이다. 손아람은 작가이기 전에 속사포 랩을 구사하는 래퍼였다. 그는 ‘손 전도사’라는 예명으로 친구 오혁근(오 박사), 이하윤(sid)과 함께 1998년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이하 진말페)라는 힙합 그룹을 결성해 활동했다. 진말페는 특유의 랩으로 많은 호응을 얻으며 언더그라운드 힙합 신에서 주목받았다. 지금까지도 유효한 삶을 관통하는 사유나 어린 날의 방황을 씁쓸할 만큼 진솔하게 가사에 담아냈다. 그들은 국내 힙합 1세대인 조PD, DJ Wreckx, DJ Uzi, Ra. D, 태완, UMC, MC 메타 등과 대중음악의 격동기를 함께했다. 이들과의 에피소드 일부를 실명과 함께 소설에 녹여 읽는 재미를 더했다. 이 책은 진말페를 결성하고 활동을 접기까지의 이야기를 시간 순으로 구성했다. 90년대 말, 2000년대 초반의 힙합 문화가 생생히 재연된다. 이제 막 상륙한 음악 장르에 푹 빠져버린 이들의 문화는 어딘가 모르게 어수선하고 서투르지만 열의만큼은 순전하다. 무대와 관객석의 경계가 없는 좁은 지하 공연장. “음악이라기보다 민주주의를 실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만큼 힙합이라는 공통 관심사 하나로 뭉친 가수와 관객들은 공연 내내 위계 없이 함께 포효한다. 작가는 “유년기의 낙서”와 같은 20년 전의 기억 조각들을 하나하나 되짚는다. 인생을 정박하길 바라는 사회 세상이 기대하는 바를 거스르고 청춘, 자유롭게 부유(浮遊)하다 베토벤의 교향곡 ‘운명’을 듣다 왼쪽 청력을 잃은 아람. 그는 랩 음악에 깊이 빠져든다. 오직 랩을 듣는 것이 고교 인생의 전부다. 그는 랩 음악에 함께 미쳐 있던 같은 반 친구 오혁근과 언더그라운드 힙합의 성지인 신촌의 클럽 ‘크립’의 오디션에 나간다. 열정과 패기가 그들이 가진 전부이자 천부적인 재능인 탓에 책상을 두드려가며 녹음한 그들의 믹스 테잎 그리고 첫 오디션은 프로의 세계에서 철저히 무시당하고 만다. 하지만 우연히 그곳에서 아람의 초등학교 동창 이하윤을 만나게 되고, 작곡가로서 다분한 재능을 지닌 그가 팀에 합류하면서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한테 고백할 때는 누구나 최선을 다해. 그 사람에 대한 진실한 마음의 표현이라고 믿으면서. 하지만 어느 순간 모든 것이 다 자기과시였다는 생각이 들 거야. 오직 진실과 진심만을 담기 위한 것이라고 보기에는, 세상의 모든 창작물들이 필요 이상으로 복잡한 모습을 하고 있어. (중략) 우리는 그렇게 단출하고 솔직한 음악을 해야 해. 두 눈을 응시하며 ‘사랑해’ 한 마디를 건네는 최선의 방법을 두고, 매해 5월 장미 백 송이로 생각을 표현하는 것 같은 바보스러운 음악은 하지 말자.”_[왼쪽 세계] 중에서 진말페가 하고자 했던 음악의 성격은 그들이 음악을 사랑하는 방식과 닮았다. 때론 서태지가 이룬 사회적 성공, 팬들의 환호성, 동경의 눈길, 숨 쉬듯 팔려나가는 음반 등 스무 살이 그려볼 수 있는 온갖 부귀와 영화를 꿈꾸기도 하지만 이런 소소한 환상들은 음악을 하려는 근거가 되진 못한다. 그들은 허울이나 과시 없이 음악을 사랑한다. 아람이 자신 있게 “힙합만큼은 순수하게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다. 제자리걸음에 불과할 것 같았던 그들의 음악 활동은 기적처럼 먼저 연락해 온 디제이 우지, 조PD, 소울트레인 브라더후드를 만나면서 행보를 이어가게 된다. 기대와 좌절의 롤러코스터 끝에 진말페는 힙합 공연에서 전례가 없던 실험적인 공연으로 사람들의 광기 어린 환호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세계는 그리 관대하지 않다. 기회라고 여긴 손길의 이면에 붙은 속셈들을 알아차릴 때마다 그들은 조금씩 성장하게 된다. 성공을 위해 타인의 열정을 발판 삼으려는 이들이 판치는 음반업계에서 그들은 무사히 음반을 내고 데뷔해 대중들의 찬사를 받을 수 있을까? 별이 아닌 암흑에 있을지라도 미련하게 걷고 또 걸어가던 나를 만나다 “나는 깍지 낀 손으로 머리를 받친 채 하늘을 바라보았다. 드문드문 별이 떠 있지만 나머지 대부분의 공간을 암흑이 뒤덮고 있었다. 확신컨대 내 영혼은 별이 아니라 암흑 속에 있을 거다.”_[왼쪽 세계] 중에서 아람은 고등학교 시절 국어교사에게 들었던 말을 자주 되뇐다. “하늘에 자기 별을 가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너처럼 별 사이 암흑을 채우는 놈들도 있지.” 암흑을 채우는 놈들. 별처럼 발광하며 주목을 끌지 못하는 암흑. 별들의 주변을 배경색처럼 채우는 인생. 힙합을 하면서 가장 두려웠던 미래는 이와 같은 모양일지 모른다. 하지만 아람과 혁근, 하윤은 음악과 함께 성장하면서 암흑을 자연스레 포용한다. 찬란하게 빛나다가도 이내 스러질 별이 되기보다 한자리를 묵묵히 지키는 “희미한 이야기”가 되기로 한다. 그들은 삶의 순간순간마다 쉽게 득의만만했지만 기대가 물거품이 되었을 때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그들이 음악 활동을 접기로 합의했을 때 진말페라는 그룹의 역사는 암흑에 박제될지언정 그들의 이야기는 박제되지 않았고, 그다음 행보에 원동력이 된다. 스무 살, 젊음과 맞바꿔도 아깝지 않았던 무언가. 재지 않고 품었던 꿈 혹은 곁을 지켜주던 친구들. 그때의 울림을 지금까지도 간직하며 사는 우리에겐 떠올리기만 해도 웃음 지을 수 있는 기억들이 있다. 이 이야기 끝에 독자는 지금의 나를 있게끔 만든 열정과 재능 사이를 저울질하며 방황하던, 그래서 과감하고 용감했던 시절의 나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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