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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숙녀들의 사회

유럽에서 만난 예술가들

Description:...

세상에 맞서 방랑을 꿈꾼 숙녀들을 만나다!

“집을 찾으러 나섰다가, 그 대신 세상을 발견했다.”

삶이 바닥으로 떨어졌을 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수트케이스에 삶을 욱여넣고 자신에게 영감을 준 예술가들을 지도 삼아 패기 있게 떠난 여자가 있다.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소개되는 작가 제사 크리스핀, 그녀의 재기 넘치는 책 『죽은 숙녀들의 사회』 (원제 The Dead Ladies Project)에 대한 이야기다.

문학잡지 편집장이자 서평가인 크리스핀은 서른살에 자신의 인생이 바닥에 떨어졌다고 생각하여 자살을 시도하고, 그마저 실패하자 유럽으로 떠난다. ‘천재’ 제임스 조이스의 아내로만 불렸던 노라 바너클,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의 작가 진 리스, ‘위대한 시인’ 윌리엄 예이츠의 청혼을 거절한 혁명가 모드 곤, 동성애자임을 숨기고 사회적 질타를 피하기 위해 선택한 결혼으로 평생 고통받은 서머싯 몸. 세상에 맞서 탈주하고 방랑한 여성들과, 스스로를 구속하고 억압하는 ‘남성성’과 싸워야 했던 남성들. 크리스핀은 이들을 ‘죽은 숙녀들’이라 일컫고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그들이 어떻게 그 시간을 견뎠고 어떻게 어둠 속에서 헤어나왔는지를 탐구한다.

크리스핀은 예술가들의 전기, 예리한 문학적 분석, 개인적 체험을 제프 다이어 · 알랭 드 보통을 연상시키는 유려한 문장과 아포리즘을 통해 하나로 엮어낸다. 『죽은 숙녀들의 사회』는 흥미진진하고 다채로우면서 번뜩이는 통찰과 유머가 가득한 철학적 에세이로, 이 책을 집어든 독자는 고독하지만 위대한 저항을 해낸 숙녀들을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아홉가지 색채의 도시들,

아홉명의 매력적인 숙녀들

『죽은 숙녀들의 사회』는 저자인 제사 크리스핀이 유럽의 아홉개 도시를 여행하면서 각 도시에 머물렀던 아홉명의 예술가들을 소개하는 책이다. ‘죽은 숙녀들’로 일컬어지는 이 예술가들은, 세상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혹은 세상에 맞서기 위해 각자 아홉개의 도시로 떠났다.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는 아버지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해 고통스러운 청년기를 보내는데, 베를린은 그 시기 제임스가 도망친 곳이다. 공부를 한다는 명목으로 아버지로부터 달아나 베를린에 머물면서 제임스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그는 그곳에서 자유의지를 발견했고, 아버지가 원하는 길이 아닌 자신이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찾았다.

트리에스테에서는 ‘천재 제임스 조이스의 아내’로 유명했던 노라 바너클의 자취를 느낄 수 있다. 크리스핀은 트리에스테에서 누군가의 아내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이름으로 살았던 노라 바너클을 조명한다.

유고슬라비아의 역사와 문화를 그린 르포르타주 『검은 양과 회색 매』를 집필하기 위해 사라예보로 떠난 리베카 웨스트는, 여성을 ‘전쟁으로 흐느끼는 존재’로만 그리지 않고 전쟁을 겪은 한 인간으로 서술한다. 크리스핀은 웨스트의 여정을 따라가며 사라예보에서 ‘악’에 대해 고찰하기도 하고, 웨스트가 ‘어머니’의 역할에 충실하지 못했다며 비난받은 이야기를 꺼내며 여성 작가의 위치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남프랑스는 예술문학잡지 『리틀 리뷰』의 창립자이자 편집장으로 알려진 마거릿 앤더슨이 머물던 곳이다. 마거릿 앤더슨은 문단 권력에 초대받지 못한 변방의 시골 여자였지만, 『리틀 리뷰』를 창간하여 T. S. 엘리엇, 제임스 조이스 등 20세기의 주요 작가들을 배출해낸다.

시인 윌리엄 예이츠의 뮤즈로 유명한 모드 곤은, 아일랜드의 자치를 위해 운동을 벌인 혁명가다. 곤은 예이츠의 청혼을 수십번 거절하면서 자신의 신념을 위해 평생 분투하는 삶을 살았다. 크리스핀은 아일랜드의 골웨이에 머물면서 곤이 꿈꾸던 주체적인 삶을 이해하고자 한다.

러시아 출신의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는 제1차 세계대전을 피해 스위스의 로잔으로 망명한다. 그는 오케스트라와 발레단, 동료, 악기 등 많은 것을 빼앗긴 채 로잔이라는 시골구석에 머물러야 했지만, 그곳에서 주어진 상황의 한계를 인정한 후 오히려 가장 자유롭게, 새롭고 뛰어난 곡들을 써낸다.

『인간의 굴레』라는 작품으로 잘 알려진 소설가 서머싯 몸은, 동성애자였으나 사회적 매장을 피하기 위해 시리 몸과 결혼한다. 끊임없이 애정을 갈구하며 윽박지르는 아내에게 상처입고 망가져가면서, 몸은 결혼과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을 담은 소설들을 써낸다. 스파이 임무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면서 아내와 잠시 떨어져 있게 된 때가, 몸이 유일하게 시리로부터 도망칠 수 있었던 짧은 순간이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사이, ‘신여성 시대’를 살았던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의 작가 진 리스는 학교를 마치기 위해 런던에 오게 된다. ‘여자는 실패하거나 죽임을 당할 수 있어 위험하다’는 도시전설 속에서 진 리스는 남성들에게 거의 자신의 전부를 의지하여 생활을 영위해나갔는데, 크리스핀은 리스의 이러한 의존적인 태도와 연약함을 비판한다.

클로드 카엉은 프랑스의 레즈비언 예술가이자 사진가로, 연인이자 동료였던 마르셀 무어와 함께 저지 섬에서 반나치 운동을 벌인다. 그들은 저지 섬에서 반나치 선전물을 몰래 돌려 나치에 대항하는 정치적 저항을 하는 한편, 독특하고 전위적인 사진 작업을 하여 아름다운 작품들을 만들어낸다.

기록되는 여자가 아닌

기록하는 여자

크리스핀은 『죽은 숙녀들의 사회』를 통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노라 바너클은 천재의 아내가 되고 싶었을까?’ ‘모드 곤은 예이츠의 뮤즈로 살고 싶었을까?’ 그녀는 ‘기록하는 여자’가 되어, 역사에 기록되기만 했던, 자신의 입으로 발화하지 못한 여성들을 정면으로 끄집어낸다. 제임스 조이스나 윌리엄 예이츠를 비추었던 조명의 각도를 틀어, 노라 바너클과 모드 곤을 비춘다. 무대의 조명은 가운데가 아닌 변방을 비추고, 어둠 속에 묻혀 있던 여성들의 이야기가 밝은 곳으로 나온다. 크리스핀은 누군가의 뮤즈나 연인이 아닌 그들 자체의 이야기를 무대 중심으로 끌어낸다.

한편 『죽은 숙녀들의 사회』는 단순히 ‘기록되는 여자’로 남지 않았던 리베카 웨스트나 마거릿 앤더슨에 대해 소개하기도 한다. 사회적 커리어를 쌓고 싶어하는 이들을 향해 권력을 가진 ‘남성’ 혹은 ‘중심 세력’은, (사실 사회적 커리어와는 관련이 없는) ‘어머니’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는지를 물으며 비판하거나 ‘시골 촌뜨기 여자’가 도시에서 얼마나 살아남기 힘든지를 끊임없이 세뇌시킨다. 자신들의 무대로 진입하지 못하도록 숙녀들에게 철벽을 두른다. 그러나 이 숙녀들은 그런 방해를 뚫고 사회적 성공을 얻거나 스스로 중심이 되어 새로운 권력을 창조해냈다.

크리스핀은 이런 여성들을 통해 오늘날 여성들에게 되묻는다. 여전히 기록되는 존재인가, 아니면 스스로 기록하는 존재인가.

방랑과 방황 속으로

떠나고 싶은, 떠나야만 하는 당신에게

한편 『죽은 숙녀들의 사회』는 방랑과 방황에 대한 이야기다. 크리스핀은 몰락을 배우기 위해 방황의 장소인 베를린으로 떠나는가 하면, 진 리스의 자취를 좇아 좋아하지 않던 도시인 런던으로 향하기도 한다. 카엉이 나치 독일군을 상대로 반나치 선전물을 돌렸던 저지 섬에서는 직접 카엉의 묘지를 찾아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전하고, 사라예보에서는 ‘저쪽 세계의 악’을 규정짓는 것에 대해 반성하기도 한다. 크리스핀이 누비는 유럽의 도시 곳곳은 단순히 지나치는 여행지가 아닌, 예술가의 삶과 그가 살았던 시기, 역사와 문화, 그리고 크리스핀 자신의 삶에 대한 고찰이 뒤엉켜 고유의 분위기를 뿜어내는 독특한 장소다.

특히 크리스핀은 예술가들이 좌절하고 도망친 장소를 찾았다. 독자는 그들을 통해 사회적 압박과 구속으로부터 과감히 도망치는 태도를 익힐 수 있을 것이다. 계속해서 ‘더 나은 무언가’를 요구했던 아버지로부터 도망친 윌리엄 제임스나 ‘결혼’으로 옭아맸던 아내로부터 도망친 서머싯 몸이 그러했던 것처럼. 크리스핀이 제시하는 ‘떠남’은 현실이 숨 막히게 죄여올 때 가만히 가라앉지 않으려는 절박한 몸부림이다. 가지고 있는 짐을 과감히 내팽개친 후 기꺼이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크리스핀은 “술에 취해 바닥에서 흐느낀 적이 있다”는 솔직한 문장을 통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좌절을 당당하게 고백한다. 그녀는 말한다. “중요한 것은 고통이 아니라 그 고통에 대처하는 방법”이라고. 삶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과 유려한 문장, 조금 삐딱하지만 더없이 진솔한 시선으로 버무린 이 여정을 통해 독자는 크리스핀이 말하는 ‘아름다운 실패’를 이해하고 숙녀들의 방황에 동참하여 스스로의 삶을 일으켜세울 수 있을 것이다.

『죽은 숙녀들의 사회』는 하나의 장르로 단정 지을 수 없는, 수많은 매력을 지닌 에세이이자 인문서다. 독자에 따라, 혹은 읽는 순간이나 장소에 따라 이 책은 시시각각 돌변할 것이다. 때로는 낯선 유럽 도시의 아름다움을, 때로는 세상에 맞서 고군분투했던 숙녀들의 치열함을, 때로는 방황하는 영혼들을 위로하는 재기와 통찰을 보여줄 것이다. 무엇으로 읽든, 독자는 이 책을 결국 사랑하게 될 것이다.

추천사

이 책을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바닥에 있기 때문에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람,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에 오직 꿈꾸었던 사람, 여성이라서 자신이 기록될 방식을 씁쓸하게 회의해본 사람이라면, 제사 크리스핀이 왜 죽은 이들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길 위에 섰는지 이해하리라. 이것은 절박한 여행의 기록이며, 망설임 없는 존재의 증명이다. 아,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

이다혜(『씨네21』기자, 작가)

그녀의 방에 실종될 채비가 된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다. 변방과 주변부의 이름으로 한껏 억압받아온 모든 이들, 불확실한 삶을 응시하면서 혐오의 목소리와 건물 사이에서 현기증이 나는 이들. 어지러운 세상에서 분노하고, 무기력하고, 그럼에도 심연과 방랑이 여전히 궁금해서 가슴 뛰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다양한 영감을 수혈해줄 것이다.

홍승희(작가)

그녀의 방에 『죽은 숙녀들의 사회』는 책에 관한 책이지만, 읽기에 관한 책이라고 말하는 건 실수일 테다. 이 책은 살기에 관한 책이다. 내게 통한 것이 당신에게도 통할 테다. 바로 당신 말이다!

『로스앤젤레스 리뷰 오브 북스』

『죽은 숙녀들의 사회』는 어떻게 살지 실험하는 이야기인 동시에, 그 실험을 위해 책들과 교감한 기록이다.

『가디언』

『죽은 숙녀들의 사회』는 치열한 투쟁과 명료한 혼란을 담고 있다. 그리고 아주, 아주 재미있기도 하다. 이 책은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며 돌아다니는 야수 같다. 세련된 만큼이나 거칠고, 치열한 만큼이나 별난.

『시카고 트리뷴』

차례

방황을 시작하며 / 시카고

1. 몰락한 이들이여, 이곳으로 오라 / 윌리엄 제임스, 베를린

2. 그녀는 천재의 아내가 되고 싶었을까 / 노라 바너클, 트리에스테

3. 어머니는 왜 야망을 품으면 안 되는가 / 리베카 웨스트, 사라예보

4. 초대받지 못한 여자, 다른 이들을 초대하다 / 마거릿 앤더슨, 남프랑스

5. 뮤즈가 되기엔 너무 주체적이어서 / 모드 곤, 골웨이

6. 모든 걸 잃은 순간 온전히 자유롭다 /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로잔

7. 사랑에 부서지고 결혼에 무너지고 / 서머싯 몸, 상트페테르부르크

8. 연약한 척 우는 건 역겹다 / 진 리스, 런던

9. 그녀들의 고독하고 위대한 저항 / 클로드 카엉, 저지 섬

또다른 방황을 시작하며 / 자킨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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