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무엇인지 밝히기 위해 오랫동안 연구가 이뤄지고
엄청난 분량의 글이 작성되었지만,
전쟁의 비밀은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 조지 패튼
충격의 문제작 『살인의 심리학』의 속편,
이제는 전투다!
눈앞에 있는 적군을 향해 방아쇠를 당길 수 없던 군인들의 이야기, 인간의 본성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살인에 대한 거부감, 누구나 불편해하는 주제인 살인에 대해 연구하면서 살해학killology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여 퓰리처상 후보에 오른 문제작 『살인의 심리학』의 저자 데이브 그로스먼이 전투에 대해 다룬다. 『전투의 심리학』은 20년간 미 육군에서 복무한 예비역 중령인 데이브 그로스먼과 30년간 경찰 및 군 생활에 헌신한 로런 W. 크리스텐슨, 두 베테랑이 현직에 근무하고 있는 군인, 경찰이 경험한 수백 건의 실제 전투 사례를 수집하고 문헌 연구를 통해 체계화시킨 전투에 관한 대백과사전이다.
전투는 인간이 다른 인간에 대해 맹렬하게 공격성을 나타내는 사건으로 극도의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스트레스로 인해 심박수가 급격하게 증가하는 상황에서 인체는 각종 인지 왜곡을 경험하고 뒤죽박죽이 된다. 전투가 끝난 후에는 전투 중에 자신이 저지른 여러 행동으로 인해 트라우마가 남고,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을 경험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전투를 수행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주로 군인과 경찰이다. 사회에 고용되어 안보를 지키고 치안을 유지하는 사람들이며 우리의 아들딸이고 이웃이다. 저자는 이들을 통틀어 전사라고 부른다. 내국인에 의한 범죄, 외국인에 의한 범죄 등으로 점점 더 폭력적으로 변해 가는 현대 사회를 보전하기 위한 전투 중에 수많은 전사들이 목숨을 잃었고 현재도 고통받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전투에 대해서 조금 더 잘 이해하고 있었다면 더욱 많은 전사들이 아직까지도 우리와 함께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전투의 심리학』은 전사들의 생존을 돕기 위해 저자들이 바치는 책이다.
전투의 숨겨진 진실,
사랑과 전쟁 중에 일어났던 모든 일은 아름답다?
그로스먼은 공포증에 대한 이야기로 책을 연다. 공포증은 단순히 두려움을 느끼는 것과는 다르다. 공포증은 특정 대상이나 사건에 대해 비이성적으로, 정도가 매우 심각해 통제가 불가능해질 정도로 두려워하는 것이다. 공포증을 일으키는 유명한 대상 중 하나인 뱀의 경우 약 15퍼센트 정도의 사람들에게 공포증 수준의 반응을 유발시킨다. 그러나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 대해 공격성을 나타내는 경우 최대 98퍼센트의 사람들이 공포증 수준의 반응을 나타낸다.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방에 어떤 사람이 들어와서 아무에게나 갑자기 총을 쏘거나 큰 칼로 난도질한다고 가정하자. 과연 그때 방의 사람 중 몇 명이 공포증 수준의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전투의 현장은 인간이 인간에 대한 공격성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장소이다. 극한의 환경이다.
그로스먼은 전투에 대해 <깨끗하고 담백한 일이 아니며 정확히 그 반대다. 눈물과 피로 얼룩진 치명적이고 부패한 영역>이라는 자신의 관점을 명확하게 밝힌다. 하지만 <사랑과 전쟁 중에 일어났던 모든 일은 아름답다>는 말이 있듯이 전투의 경험은 왜곡되고 부풀려지고 미화되기 마련이었다. 그 와중에 진짜 현실은 개인적이거나 정치적인 사유로 은밀하게 감춰졌다. 감추고 싶은 일례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군 전체의 전과에 관한 공식 연구서 『아메리칸 솔저』에 따르면, 참전 용사의 4분의 1이 바지에 오줌을 쌌고, 8분의 1은 똥을 쌌다. 최전선에 있던 병력으로 대상을 한정하고, 다시 그중에서 격렬한 전투를 경험하지 않은 병력을 제외하면, 약 50퍼센트는 바지에 오줌을 쌌고 약 25퍼센트는 똥을 쌌다. 솔직하게 사실을 인정한 군인들의 증언만 반영하여 이런 결과가 나왔고, 실제의 수치는 알 수 없다. 생사가 오가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아 하부 창자에 부하가 걸리면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전투 중에 겪은 자존심 상하고 굴욕적인 경험을 초연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저자는 또 다른 은폐의 역사를 제시한다. 리처드 게이브리얼의 저서 『더 이상 영웅은 없다』에 따르면, 제1·2차 세계대전과 한국 전쟁 같은 대규모 전투에서 정신적 사상으로 인해 후송된 인원은 싸움 중에 사망한 인원보다 더 많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벌어진 이런 현상은 <잃어버린 사단Lost Divisions>이라고 명명되어, 약 50만 4,000명의 병력을 잃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용감하게 싸우다가 전사하는 사람은 널리 알려지는 반면, 대부분의 사람들, 심지어 직업 군인들조차 훨씬 많은 수의 병력이 정신적 사상자란 이유로 조용하게 후송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 외에도 숨겨진 전투의 실상은 무궁무진하다. 과학적으로 연구가 한창 진행 중인 각종 심리적‧생리적 현상들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전투에 나서는 사람이라면 전투의 모든 측면에 대해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지 못한 상태에서 전투에 참가하는 것은 결정적인 순간에 치명적인 오판으로 이끌고, 전투 중에 스스로의 생존에 악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전투 후에 정신적 사상자가 되는 지름길이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딛고 생존하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생사가 걸린 상황에서 심한 불안감, 무력감, 혹은 공포를 경험하게 되면 발생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나타나면 각성 징후가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잠들거나 수면 상태를 유지하기가 어려워진다. 감정의 벽이 만들어져 사건과 관련된 기억을 대면할 수 없고, 그런 기억은 꿈에서 환자를 괴롭힌다.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지난 사건을 연상시키는 작은 계기가 만들어지면 갑자기 식은땀이 비 오듯 흐르면서 공황 발작이 엄습한다. 결과적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로스먼은 이야기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충분히 다스릴 수 있으며 예방도 가능하다.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증상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다. 스스로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로 스트레스 장애를 앓게 된다. 그러나 생사가 걸린 상황에서 불안감, 무력감, 또는 공포를 경험하거나, 사건이 지속적으로 피해자를 괴롭히거나, 트라우마와 관련된 자극을 병적으로 피하려 들거나, 장애가 한 달 이상 지속되고 임상적으로 심각한 고통을 받기 전까지, 이 네 가지 상황이 한꺼번에 일어나지 않으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정신 장애의 진단 및 통계 편람』) 또한 스트레스 장애로 판명되는 경우에도 위기 상황 디브리핑, 안구 운동 민감 소실 및 재처리EMDR 등의 현대적 심리 치료 방법으로 극복해 나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극도의 스트레스가 오는 상황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훈련해서 심적 대비를 갖추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오지 않는다고 저자는 단언한다.
전사들을 위해 바치는 찬가
저자 데이브 그로스먼과 로런 크리스텐슨은 『전투의 심리학』이 모든 젊은 전사들에게 바치는 겸허한 제단(祭壇)이 되길 바란다. 지금까지 수많은 전사들이 목숨을 잃었다. 전쟁과 폭력, 전투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어떠한 견해를 가지고 있든, 현재 우리 사회는 그들의 희생으로 이룩한 토대 위에 서 있다. 우리가 사회적 합의를 통해서 그들을 전투의 현장으로 보냈으며, 그들은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람들인 만큼 우리는 어느 정도 그들에 대해 도덕적인 책임감을 느낄 의무가 있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9‧11 사태 이후로 미국에서는 저자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점점 공감대를 넓혀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상황과 사상에는 많은 차이점이 있으나 국내에도 국민을 위하여 봉사하고, 그 과정에서 육체적‧정신적으로 심각한 상해를 입기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투의 심리학』은 이런 사람들이 정신적인 준비를 갖추고 생존을 도모하는 데 도움을 주는 매뉴얼이며 우리의 현실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하는 거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