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컬의 횡단과 접선, 새로운 사상의 탄생
주류 담론이 지배하는 환경에 반격을 가하고, 담론의 지형을 뒤흔든다는 취지로 창간한 『문학/사상』이 8호를 발간한다. 이번 호 ‘트랜스로컬’에서는 『문학/사상』이 끊임없이 견지해온 로컬을 지속적으로 호명하고 또 실패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컬 속에서 희망을 지탱하는 삶에 주목한다. 아리프 딜릭의 말처럼 거듭 로컬을 소환하는 까닭은 그것이 처한 곤경을 가능성으로 전환하려는 과정에 있다. 로컬은 몸의 감각과 일상, 생활의 구체가 자리하는 경험적 삶이 실현되고 지속되는 장소이다. 근대를 경험한 로컬은 끊임없는 종속과 수탈을 겪으며 소멸을 경험한다. 그렇기에 과거로부터 내려온 모순을 폐기할 수 있는 가능성의 장소가 된다. 구체적 세계와 공간을 토대로 로컬의 삶이 중첩되고 그렇게 생성된 다성성의 세계는 로컬을 두껍게 사유하게 만든다. 『문학/사상』 8호에서는 이러한 구체성이 녹아 있는, 경험적 삶이 실현되는 장소인 로컬을 직시하며 그들의 횡단과 접선에 주목한다.
▶ 로컬에 부여된 종속과 착취, 그리고 모순
이번 호로 여덟 번째를 맞는다. ‘문학 슬래시 사상’이라는 이름으로 4년, 그 이름 아래, 그 시간 동안 우리가 겨눈 채로 벗어나지 않았던 동시에 불가항력적으로 붙들린 채 있었던 것, 모종의 해결책을 얻지 못하고서 암중모색(暗中摸索) 하고 있었던 과제상황, 달리 말해 실패와 좌초의 궤적을 그리면서도 무릅쓰고 조형해내고자 했던 문제설정. 그것은 ‘로컬’이었다. 혹은 위기와 위험이 중층적으로 침탈하는 땅, 즉 ‘지역’이었고, 사회적 오욕의 낙인을 찍는 비가역적인 폭력의 투하지, 즉 ‘지방’이었다.
—『문학/사상』 8호를 내며, 그 앞뒤를 살피며
비판비평에서는 그동안 『문학/사상』이 사유해왔던 지역에 대한 사유를 확장하여 로컬을 횡단하고 접선하여 그 사이의 차이와 모순을 지각한다.
구모룡은 「접촉지대 부산을 사유하는 작가들」에서 비대칭적 관계가 유지되는 접촉지대 부산을 사유하고, 트랜스 로컬을 통해 비판적 로컬주의에 비등하는 성취를 보여준 정영선, 박솔뫼, 김숨의 소설을 조망한다. 그는 모옌의 글을 빌려 고향을 이야기하는 일이 고향의 찬가에 그치지 않아야 함을, 로컬을 통하여 새로운 사상을 생성해야 함을 강조한다.
김만석은 「해안선의 사상-트랜스로컬 공간의 창안을 위하여」에서 아시아태평양의 해안선을 따라 국민 국가와 자본의 폭력으로부터 내쫓긴 자들의 지혜와 삶 그리고 예술을 통해 세계를 구상하려는 장소의 창안, ‘해안선의 사상’이 필요하다 주장한다. 이에 김정한과 현기영의 소설을 살피며 제주 4.3을 다룬 소설을 통해 대안적 장소로서의 제주 창안을 제안한다.
김서라는 「<전일그라프>의 이미지 그리고 광주와 전남의 낙차들」에서 1970년대 <전일그라프>에 실린 사진 하나를 매개로 기획된 이미지와 광주와 전남의 낙차를 해석하고 1970년대에 담긴 로컬 속 내부 식민지와 그 사례를 분석한다. 그는 도시와 농촌의 위계화된 관계를 드러내는 이미지를 통해 로컬의 정체성 구축, 지역 간의 분열, 나아가 농촌을 착취하는 시스템에 대해 사유한다.
▶ 대중문화 발상지로서의 로컬
현장비평에서 장상은과 이중기는 로컬의 발상과 로컬을 뛰어넘어 확산시킨 영향의 토대로서 지역을 조망한다.
현장비평 「조대영 비디오 아카이브」에서 장상은은 광주 아시아문화전당에서 진행된 기획전 <원초적 비디오 본색> 전을 통해 조대영의 비디오 컬렉션을 살피고 지역 영화의 발전을 알아본다. 또한 가요제를 통한 광주발 대중가요의 성장을 살피며, 지역 내외부의 헤아릴 수 없는 관계망을 통해 경험되는 지역 대중문화에 주목한다.
작가론 「‘영천’을 무대로 한 하근찬 작품의 숨은 이야기」에서 시인 이중기는 『하근찬 전집』의 기획자이자 하근찬의 전작을 탐독한 자로서, 「수난이대」로만 수렴되었던 하근찬의 전체 작품 세계와 그의 생애에 주목한다. 또한, 하근찬 작품 세계가 구상된 공간인 영천과 그 입말에 대해서도 사유하며 하근찬 문학의 새로운 일면에 주목한다.
▶ 우리의 역사와 세계는 이곳에서
시에는 박승열, 서영처, 신정민, 최백규, 최영철의 신작 시를 각 2편 수록하였다. 소설에 수록된 정광모의 「마지막 전화」는 전화 상담사인 ‘나’의 이야기와 그의 내담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현대 사회에 놓인 문제를 짚고 있다.
서평에서는 로컬의 장소성과 그 속에서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의 내밀한 세계를 확인하며 그들의 역사와 미래를 향한 희망을 이야기한다.
황은덕은 그레이스 M. 조의 『전쟁 같은 맛』을 통해 사적이고 내밀한 과거가 우리 현대사와 맞물려 있는 이민 1세대, ‘양공주’라 불리던 어머니의 생애사를 살피고 연구하는 학자의 모습을 보고 자아와 세계를 새롭게 바라본다.
정미선은 박사라의 『가족의 역사를 씁니다』를 읽어나가며 재일코리안으로서의 ‘가족의 역사’를 훑는다. 재일코리안이라는 복잡하고 모호한 위치성 속에서 역사의 시공간을 체험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살피며, 그는 ‘당신의 가족 이야기는 어떠한가요?’ 질문을 건넨다.
김대성은 정영선의 『아무것도 아닌 빛』을 읽으며 빨치산과 디아스포라뿐 아니라, 누군가를 기다리며 주변을 보살펴왔던 조향자의 돌봄을 수행한 삶을 직시한다. 그는 조향자의 돌봄을 통해 그 속에 쓰이지 않았으나 분명히 담긴 정동적 평등을 바라본다.
양진오는 조현준·전민규의 『기록을 찍는 사람들』을 통해 대구 남산동의 작은 인쇄골목을 걷는다. 대구 원도심의 장소성을 재현하고, 지역 공동의 기억을 공유하는 기록을 읽으며 그는 공간을 삶의 장소로 바꿔낸 장인들을 조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