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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에게 어울리는 장르, 추리소설

Description:...

1. 미스터리 전문지 《미스테리아》 편집장 김용언이

여성의 관점에서 새롭게 읽은 추리소설 독서록


마샤 멀러의 ‘샤론 매컨’, 수 그래프턴의 ‘킨지 밀혼’, 새러 패러츠키의 ‘V.I. 워쇼스키’ 같은 여성 사설탐정 주인공이 주류로 자리 잡은 것은 언제부터일까? 1980년대다. 그전까지는? 탐정은 물론 남자였고 괜찮은 ‘직업인’으로서 명탐정의 자리는 언제나 백인-중년-남성이 꿰찼다. 문학자 마저리 호프 니콜슨(Marjorie Hope Nicolson)의 언급처럼 “탐정소설에서 여성이 맡은 두 가지 중요한 역할은 희생자와 악당”이었다. 탐정은 언감생심, “남성 편력 심한 여자, 자기 잇속 차리는 여자, 얼음 공주, 남자 같은 여자, 레즈비언, 노파, 마녀, 천사, 인형, 어린 누이”(95쪽)처럼 그저 ‘쌍년’의 변주로만 존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스터리 태동기인 19세기 말부터 1970년대까지 여성 작가들은 롤 모델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상상력만으로 여성 탐정과 범죄자를 만들어내야 했다. 미스터리 잡지 《미스테리아》의 편집장 김용언이 범죄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연 그들의 흔적을 더듬는다. 빅토리아시대부터 1920-30년대 미스터리 황금기와 1920-50년대 하드보일드 시대, 그리고 페미니즘의 영향을 받은 1970년대까지, 저자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며 여성들이 주인공이자 탐정으로 활약할 수 있는 여지를 탐색했던 작가와 작품을 소개한다. 이 책은 그간 남성 작가들에게 가려지고 평가절하되었던 여성 작가들을 만나는 흥분과 그들이 쓴 미스터리가 얼마나 다른지를 확인할 기회를 선사할 것이다.


2. 19세기 말 미스터리 태동기부터 20세기 후반까지,

희생자와 악당을 넘어 탐정이 된 여성 캐릭터와

범죄소설의 새 지평을 연 여성 작가들의 계보를 찾아서


대표적인 여성 탐정이라면 1920년대 미스터리 황금기에 등장한 애거서 크리스티의 독신자 할머니 탐정 제인 마플을 빼놓을 수 없다. 미스터리 태동기에는 없었을까? “담배를 피우고 리볼버를 들고 다니며 하수관 아래로 내려가기 위해 크리놀린을 벗어던질 수 있는 여성.” 1864년 익명의 저자가 쓴 단편 「레이디 탐정의 폭로」에 나오는 파스칼 부인에 대한 묘사다. 그는 놀랍게도 1887년 『주홍색 연구』에서 처음 등장한 셜록 홈스보다 앞서서 활동한 여성 탐정이다. ‘러브데이 브룩’(1893~94년 발표) ‘레이디 몰리’(1910년 발표) 같은 초창기 여성 직업 탐정을 만든 캐서린 루이자 퍼키스나 에마 오르치는 당대에 존재하지 않았던 상황을 픽션에서나마 수십 년 앞서 만들어냈다. 영국 경찰 조직인 스코틀랜드 야드에서 여성을 정식 채용한 때가 1915년이기 때문이다.


미스터리 소설사를 선도한 작가와 작품도 살펴보자. 1930년대부터 출간되어 20세기 중반의 영미권 소녀 독자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친 ‘(소녀 탐정) 낸시 드루’ 시리즈는 미스터리와 여성, 페미니즘과의 연관성으로 21세기에 다각도로 연구되는 작품이다. 메리 로버츠 라인하트의 1908년 작 『나선 계단의 비밀』은 ‘내가 진작 알았더라면(Had-I-but-Known)’ 유형을 확립시킨 작품이다. 또 남편 로스 맥도널드의 명성에 가려진 작가 마거릿 밀러는 『내 안의 야수』 같은 작품으로 21세기 영미권 범죄소설의 유행 장르인 가정 스릴러(domestic thriller)를 이미 1950년대에 선취했다. 1980년대의 성과에 기여한 70년대 작가로는 어맨다 크로스(컬럼비아대학교 문학 교수였던 여성주의 문학자 캐롤린 하일브런이 페미니스트 탐정 ‘케이트 펜슬러’ 시리즈를 쓰는 작가로서의 필명)가 있다. P.D. 제임스의 1973년 작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은 1893년에 등장했던 직업 탐정 ‘러브데이 브룩’의 뒤를 잇는 전문 여자 탐정을 80여 년 만에 등장시킨 작품이다.


3. 여성이 쓴 미스터리는 무엇이 다른가?

하드보일드의 클리셰를 깨뜨린 작가와 작품들


1950년대 절정에 달한 하드보일드는 남성 작가가 쓰고 남성 주인공이 등장하며 여성 범죄자를 경멸하고 처단하는 작품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 장르는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왔지만 사회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남성들의 분노와 피해의식을 ‘여성을 대상으로’ 거침없이 표출했다. 저자는 하드보일드 장르의 대표적인 작가인 대실 해밋, 레이먼드 챈들러, 미키 스필레인 등의 서사를 분석하면서 이들이 여성 캐릭터에게 어떻게 혐오와 경멸을 드러냈는지 살펴본다.


여성 작가가 쓴 하드보일드는 얼마나 다를까? 저자는 비라 캐스퍼리의 1942년 작 『나의 로라』와 도로시 휴스의 1947년 작 『고독한 곳에』가 남성과 여성의 대결 구도 속에서 남성성과 남성의 시선에 대한 선입견과 신화화를 어떻게 경계했는지 살핀다. 특히 『고독한 곳에』는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을 처음으로 등장시킨 작품인데, 작가 휴스는 귀향 군인인 연쇄살인범 스틸에게 어떠한 변명의 여지도 주지 않는 단호함을 견지한다. 그리고 살인이 밝혀지기 전까지 스틸이 범한 가장 큰 실수가 실비아와 그레이라는 두 여성의 시선을 전혀 제어하지 못한 점이었음을 보여주며, 기존 하드보일드 장르가 무시했거나 놓친 진실을 포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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