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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의 문자

Description:... 전 세계의 슬픔을 통역하고 우는 사람의 등을 안으며 쓰는 초월과 포옹의 시 2012년 《현대문학》 신인 추천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시인 이상협의 첫 시집이 민음의 시 247번으로 출간되었다. 이상협 시인의 첫 시집 『사람은 모두 울고 난 얼굴』은 현직 아나운서로 활동 중인 시인의 독특한 체험의 자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는 앵커로서 데스크에서 미처 전달하지 못한 뉴스에 대해 느끼는 괴리를 미세하고 섬세한 시어로 빚어낸다. 또한 세계 각국을 취재하고 촬영하는 리포터가 되어 국경을 넘기도 하는데, 이때 앵커에서 여행자로 변모한 시인은 그가 지닌 유일무이한 카메라인 시로써 이국의 이미지를 담아낸다. 앵커, 여행자, 시인. 이상협의 시는 그가 몸을 바꾸면 그 사이에 생기는 낙차로부터 탄생한다. 같은 곳에서 다른 언어로: 시인이자 앵커 마지막 뉴스가 끝나면 한쪽 귀를 접습니다 뜨거운 수증기로 얼굴을 지웁니다 세수를 하면 자꾸 엄지손가락이 귀에 걸립니다 나는 조금만 잘 지냅니다 ―「앵커」에서 시집 『사람은 모두 울고 난 얼굴』 곳곳에는 시적 화자가 “내가 진행하는 방송의 멘트”(「저절로 하루」)를 떠올리는 직업적 에피소드가 드러난다. 언어가 억압되었던 시대에 공동체의 사건을 전달해야 하는 앵커로서 시인은 수동적이고 무력하다. 시인은 정치적 상황에서 진실의 언어를 말할 수 없는 괴로운 마음을 “자기 언어를 증오했지만 나는 무사했다”(「기록」)라고 고백한다. 이 고백에서 시인은 스스로를 시대의 피해자라고 한정짓지 않으며 무사한 존재의 죄스러움까지 끌어안는다. “마지막 뉴스가 끝나”고 앵커로서 내뱉은 말이 허공에 흩어지면 시인은 그 자리에서 다시 쓴다. 뉴스가 되지 못하는 부끄러움과 분노에 대해. 이때 시인이 스스로에게 느끼는 경멸과 우울은 개인적 기분에서 시대적 공분으로 확장된다. 시집 전체에 짙게 드리운 비애감은 “광장이 사라진”(「민무늬 시간」) 한 시대의 표정이기도 하다. 앵커의 언어와 시인의 언어는 그렇게 같은 곳에서 다르게 쓰인다. 다른 곳에서 같은 언어로: 시인이자 여행자 세계 각국에서 나는 태어납니다 가난한 나라의 내가 아플 때 높은 나라의 나는 숨이 찹니다 나는 활선공이 됩니다 송전탑에 올라 감전처럼 마음과 마을을 잇습니다 (......) 극지의 내가 적도의 나를 생각하면 알레포의 내가 용산에서 식은땀이 납니다 ―「다국적자」에서 『사람은 모두 울고 난 얼굴』에는 무수한 지명들이 등장한다. 광화문과 여의도부터 오키나와, 헬싱키, 미얀마까지. 시인이 지닌 공감의 감각은 자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 민감할 뿐 아니라 시간과 공간이 멀어진 ‘다른 나라에서’도 역시 힘을 잃지 않는다. 시인이 느끼는 시대의 우울은 한국어라는 언어를 쓰는 나라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리포터라는 직업으로 인해 장기여행자가 된 시인은 어떤 국적의 사람들과 마주쳐도 그들과 깊이 연루되는 능력을 지녔다. 오키나와에서 서울을, 용산에서 알레포를 생각하며 지구상에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폭력을, 그 속에서 무감하게 살아 내는 이들을 마주한다. 여행지에서 시인의 눈이 머무르는 장면은 “우는 사람이 우는 사람을 달래”(「오하이오 오키나와」)는 순간이다. 다른 곳에 있지만 같은 것을 느끼고 같은 것을 말하므로 시인이 만난 모든 타인은 곧 ‘나’다. 그가 포착한 여행의 이미지들은 슬픔이 만국의 공용어라고 말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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