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테는 학살자 게비몬드의 아내 따위 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고향을 파괴하고 양어머니와 이웃들까지 몰살시킨 미치광이 왕의 아내 따위 되고 싶지 않았다.
살아남았지만, 화려한 보석과 드레스에 감싸인 채 인형처럼 살아가는 삶은 행복이 아니었다.
평화로운 숲속 마을에서 캐 먹던 풀뿌리와 딱딱한 빵이 그리웠다.
돌아가고 싶었다. 벗어나고 싶었다.
죽음을 무릅쓰고서라도.
“…천사여.”
믿음 없는 기도로라도.
“그대가 수호하는 낙원의 딸이 부르노라.”
뭔가를 불러낸 그녀는 천사인지 괴물인지 알 수 없는 존재의 팔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비고?”
어찌 된 일인지 10년 전에 행방불명되었던 소년이 장성한 사내가 되어 그녀를 구했다고 한다.
사악한 마녀에게 잡혀가는 걸 봤다는 꼬마들의 증언이 생생했는데.
“너 정말 비고야…?”
분명히 그 아이였다.
그녀가 제일 좋아했던 소꿉친구.
작고 사랑스러웠던 꼬마 친구.
“감사 인사는 네 약혼자한테 해. 널 구해줘서 고맙다고 내게 2만 크로네를 주겠다더라.”
하지만 그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크고 강인한 몸으로 자라 있었고, 대 영지의 성주라는 높은 지위도 가졌다, 그리고.
“그자는 내 약혼자가 아니야! 내 어머니를 죽이고 우리 고향을 파괴한 미치광이란 말이야!”
“그게 뭐?”
차가워진 눈빛과 말투.
“그자가 죽인 건 ‘남의 어머니’였을 뿐이지, 그가 자기 가족을 죽인 말종은 아니잖아? 자기 여자한텐 잘한다던데. 그 정도면 괜찮은 신랑감이야.”
비고는 겉모습뿐 아니라 내면까지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뀐 것 같았다.
“살인자라 싫어? 깨끗한 남자를 찾고 있나? 여기선 까다롭게 굴면 살아남기 힘들어, 란테.”
일러스트: 우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