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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잡지 에피(계간): 18호[2021]

후유증

Description:...

후유증은 하나의 질병이나 증상이 아니다


에피 18호 ‘키워드-숨’ 코너에 모인 글들은 후유증이 하나의 질병이나 현상이 일단 종결된 후 새로 시작되는 증상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다. 후유증은 지금 막 앓은 질병에서 우선적으로 기인하는 것이겠지만, 그것은 또한 질병을 겪기 전부터 우리에게 있던 조건, 습관, 태도가 질병을 거치며 변형되거나 심화되어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우리의 몸과 마음에, 사회, 교육, 노동, 과학에 짜여져 있던 촘촘한 틀들이 팬데믹을 감당하느라 늘어나고 비틀리고 찢어졌다가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한 채 새로운 상처를 내고 있었다. 그래서 후유증은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던 사람에 한정되지 않는다. 바이러스와 접촉이 있었든 없었든 이 팬데믹을 같이 겪은 모두는 그 후유증도 같이 겪는다.


에피 18호가 말하는 후유증은 팬데믹 초기부터 유행했던 ‘뉴노멀’이라는 것과 다르다. 후유증은 팬데믹을 계기로 하여 어쩔 수 없이 맞이하고 적응해야 하는 삶의 방식 같은 것이 아니다. ‘뉴노멀’은 누군가의 고통에 대한 이해와 공감에서 나오는 진단보다는 마치 위기 속에서 새로 포착한 비즈니스 기회인 것 같다. 비대면이라는 조건이나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를 기회로 삼아 팬데믹 중에 창출된 수요를 그 이후까지 끌고 가려는 이들이 우리에게 ‘뉴노멀’을 설파하곤 했다. 뉴노멀이 팬데믹 이후에도 함께 따라야 할 규칙이나 익혀야 할 습관처럼 우리에게 부과되는 것이라면, 후유증은 회복이나 치유의 과정을 제대로 밟지 못한 우리의 몸과 마음과 관계가 그 고통을 때로는 가시적으로 때로는 비가시적으로 겪는 상태다. 후유증은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킬 여력도 없었던 사람들, 회복과 치유의 기회를 상실한 사람들에게 찾아온다.


어떤 후유증은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살아낼 수 있을 뿐


후유증을 다루기 어려운 것은 확진자나 사망자 숫자처럼 한눈에 볼 수 있고 관리할 수 있는 지표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 감염되었다가 치료되었거나 치료되지 못한 사람은 셀 수 있고 관리할 수 있지만, 팬데믹이라는 전방위적 재난을 살다가 오래가는 상처를 입은 사람은 다 셀 수도 없고 정확히 규정하기도 어렵다. 감염병 자체와 달리 후유증은 그 사례의 총 숫자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삼기도 어렵다. 후유증은 항상 타인의 눈에 띄는 것도 아니고 어느 시점에 갑자기 검출되는 것도 아니다. 환자를 돌보다가 소진되어버린 의료진에게, 깊고 오랜 단절과 불안에 시달린 사람에게, 학교가 문을 닫은 동안 가르침과 돌봄의 손길 없이 혼자 남아 있었던 아이에게, 팬데믹 전에도 후에도 끊임없이 삶을 위협하는 빈곤에 처한 사람에게, 플랫폼의 지시에 허덕이면서 우리 모두의 비대면 생활의 틈을 메꾸었던 라이더에게, 또 실험실에 접근할 수 없어 연구도 끊기고 경력도 끊길지 모르는 과학자에게, 코로나19의 후유증은 몇 달, 몇 년, 심지어 일생을 두고 나타날 수 있다. 어떤 후유증은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살아낼 수 있을 뿐이다.


인간과 동물 사이 거리두기의 기술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발원지를 둘러싼 논의에서, 인간과 야생 동물의 관계가 다시 주목 받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이름으로 인간과 인간 사이 거리두기가 상황 변화에 맞춰 조절되고 있는 이때, 인간과 동물 사이 거리두기는 어떻게 지켜나가야 할까? 지난한 팬데믹을 겪고 나면 생태적 지혜를 얻을 수 있을까?


한국의 인간과 철새 관계 변화를 연구하는 성한아는, 매년 겨울 실시되는 〈겨울철 조류 동시 센서스〉 현장에서 철새 개체수 조사를 하는 조사원을 관찰하고 이를 기록한다. 조사원의 기록 작업에 도나 해러웨이의 논의를 적용하여, 인간의 장소에 도래한 철새와 환경 조건에 정확하게 응답한 접촉 지대를 달성한 결과로 이를 설명한다.


인간-동물 관계를 공부하고 비인간 인격체에 관심을 두고 글을 써온 남종영은 팬데믹 초기 밍크 살처분 사태와 미국의 육류 대란에 주목하며, 인류세와 관련하여 인간-동물 관계를 사유한다. 우리 인간은 야생 동물과 연결되어 있다.


지금 일어나 미래에 영향을 주는 뉴스-갓


윤신영은 지난 17호에 이어 기후변화 문제를 다룬다. IPCC 6차 보고서는 전에 없이 분명한 언어로 “인간 영향이 대기, 해양, 육지를 온난화하는 것은 명백”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일에는 구체적인 성과가 없고, 대응은 답보 상태이다.


뉴스 특집에서는 지난 10월 21일 누리호 발사를 두고 두 개의 이야기를 담았다. 기자 이근영은 발사 현장 취재와 관련한 신문 기사에 담긴 의미를 다시 돌아본다. 북한과학기술정책사를 연구하는 강호제는 북한의 인공위성과 발사체 기술을 견주어 보며, 같은 과학 기술에 다른 평가를 내리는 태도는 과학적으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지 묻는다.


팬데믹 이후 계절은 두 바퀴를 돌고 돌았다. 에피 18호를 준비하던 시점에서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새로운 변이의 발생으로 상황은 또 다시 심상찮게 전개되고 있다. 이 상황이 잦아든다 하더라도, 팬데믹 발생 이전의 상태로 쉽게 복귀하지는 못할 것이다. “고통 끝, 일상 시작”이라는 명쾌한 선언은 절대 가능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는 꽤 오랫동안 팬데믹이 우리의 몸과 마음과 관계에 남긴 상처들을 감당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후유증’이라는 말 속에 담긴 잠정적 종결, 적어도 하나의 매듭에 대한 기대를 간직하고 함께 미래를 전망해 보면 좋겠다.


지속되는 고통, 끝내 회복할 수 없는 상처가 있으리라고 인정하고, 팬데믹의 도랑에 더 깊이 빠져들어,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고 사라지는 사람들이 없도록 함께 생각해 보기를 제안한다. 나의 불행만이 전부는 아니다.


“그런 미래를 상상하는 일이 지금 저의 전부는 아니지만 저를 꽤 단단히 지탱하고 있음을, 저 또한 이 글을 쓰면서 받아들이게 된 것 같습니다.”(박서련, 「시습」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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