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문학비평에 바탕을 둔 에세이로, 기념비적 문학작품들 속에 드러난 신자의 덕을 조명한 책이다. 호평을 받는 작가 캐런 스왈로우 프라이어(Karen Swallow Prior, PhD, SUNY Buffalo)는 독자들을 소설의 세계로 안내하는 가이드를 자처하여 독자들이 위대한 작품들과 만남으로써 삶, 문학,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도록 돕는다.
저자는 신자에게 필요한 덕을 기본 덕목, 신학적 덕목, 천국의 덕목으로 대별한 다음, 해당 범주에 속하는 덕목을 분별, 절제, 정의, 용기(이상, 기본 덕목), 믿음, 소망, 사랑(이상, 신학적 덕목), 정결, 부지런함, 인내, 친절, 겸손(이상, 천국의 덕목), 이렇게 열두 가지로 소개한다. 언급하려는 덕을, 단어에 대한 어원적, 역사적, 성경적 고찰을 통해 풍성한 의미를 찾아내어 서술하다가 각 덕에 대한 저자만의 명쾌한 정의(定意)에 이르는데, 이 과정은 중세 신학자, 교부 철학자, 고대 철학자로 거슬러 올라가 현대 학자에 이르기까지 문헌을 살펴 내려오다가 자연스럽게 소설의 세계로 초대받는 흥미로운 여정이다.
저자는 소설 속 단락을 인용하여 이야기의 얼개를 드러내는데, 이미 줄거리를 알고 있는 독자들에게는 저자의 관점으로 새롭게 다시 읽어 보게 하고 줄거리를 모르는 독자들에게는 스포일러로 작용하기보다 일독의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필력을 발휘하여 독자로 하여금 각 소설이 지닌 덕의 가치를 깨닫고 실천하게 하는 도전을 해 온다.
▌목차
서문
도입
1부 기본 덕목
1. 분별: 헨리 필딩, 《톰 존스의 모험》
2. 절제: F. 스콧 피츠제럴드,《위대한 개츠비》
3. 정의: 찰스 디킨스, 《두 도시 이야기》
4. 용기: 마크 트웨인, 《허클베리 핀의 모험》
2부 신학적 덕목
5. 믿음: 엔도 슈사쿠, 《침묵》
6. 소망: 코맥 맥카시, 《로드》
7. 사랑: 레프 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
3부 천국의 덕목
8. 정결: 이디스 워튼, 《이선 프롬》
9. 부지런함: 존 번연, 《천로역정》
10. 인내: 제인 오스틴, 《설득》
11. 친절: 조지 손더스, 〈12월 10일〉
12. 겸손: 플래너리 오코너, 〈계시〉, 〈오르는 것들은 한데 모인다〉
감사의 말
토의용 질문
주
옮긴이의 말
▌출판사 서평
근검이 소개하는 ‘잘 읽고 잘 사는 법’
소설 읽는 신자에게 생기는 일이라니…. 아니, 신자를 소설 읽는 신자와 안 읽는 신자로 나누는 법도 있답니까. 아, 나눈 건 아니었습니다. 다만 신자가 소설을 읽을 때 생기는 일들을 이야기해 주고 싶었을 뿐입니다. ‘소설 읽는 일’이 누군가에겐 ‘출근하는 일’처럼 특별할 것 없는 보통의 일과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번지점프를 하는 일’처럼 어쩌다 한 번 해 보는 생소한 경험일 수도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소설 읽는 일이 이미 일상으로 자리 잡았든, 여전히 생경한 무엇으로 남아 있든 “위대한 책들은 세상에 베풀어진 아주 큰 자비”라고 오래전 리처드 백스터는 말했습니다.
세상에 베풀어진 아주 큰 자비라니…. 무언가 소설 속에 감추어진 것들을 한껏 기대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재미와 카타르시스, 공감과 위안까지는 어렵지 않게 헤아려 볼 수 있었는데, 이들 너머에 자비로 여겨질 만한 위대한 무언가가 더 담겨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가 듭니다. 저자는 그 무언가를 ‘덕’이라고 소개한 다음, 무려 열두 가지 덕을 열거합니다. 분별, 절제, 정의, 용기, 믿음, 소망, 사랑, 정결, 부지런함, 인내, 친절, 겸손. 이런 덕들을 두루 겸비한 온전한 존재가 되고픈 소원은 신자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소원을 품고 이 책을 펼쳤을 때, 처음 마주하게 되는 <도입> 장은 읽기에 녹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문학 용어가 생경한 이들에게 <도입>은 마치 물살 센 개울 위에 놓인 징검다리처럼 여겨질 수 있습니다. 이 개울을 건너야 소설의 세계에 이를 텐데, 한 발 한 발 내딛는 걸음이 괜스레 미덥지가 않습니다. 띄엄띄엄 놓인 징검다리를 조심스레 내딛어 보지만, 이렇게 가다가 과연 저편에 닿기나 할는지 걱정이 앞섭니다. 건너편 땅을 겨우 밟아 보고서야 다다랐다는 안도감이 잠시 들지만, 돌아보면 물살을 피해 오느라 밟고 온 돌이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문학 이론이 이처럼 낯설게만 여겨지신다고요? 괜찮습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도입>을 무리하게 읽어 가기보다 뒤에 나온 구체적 덕들을 먼저 읽은 다음 마지막에 <도입>을 해설처럼 읽기를 권해 드립니다. 자신에게 부족한 덕, 평소 바라던 덕을 골라 시작하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반면, 문학 용어가 모국어처럼 익숙한 이들에게 <도입>은 도움닫기를 위해 놓인 구름판처럼 여겨질 수 있습니다. 멀리뛰기나 높이뛰기 직전, 전력 질주한 힘을 한껏 내딛는 발판 말입니다. 문학 용어가 익숙하니 거침없이 질주해 올 수 있었을 테고, 그렇게 구름판에 쏟은 힘이 탄력을 받아 되튀어 오를 때 맛보게 되는 창공의 드넓음, 드높음은 힘껏 구른 자만이 경험할 수 있는 세계이지요. <도입>을 통해 벼려진 문학 이론은 앞으로 펼쳐질 열두 권의 소설 속에서 덕을 옹골차게 캐내는 좋은 연장으로 기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분들에게는 저자의 조언대로 <도입>부터 차례로 읽어 가기를 권해 드립니다.
두 경우 어디에 속하는 독자이든 평소 좋아하는 소설이 자꾸 눈에 밟힌다면 그 장부터 읽어 나가도 좋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막을 방도는 세상에 없으니까요. 도입으로 읽으면 어떻고, 해설로 읽으면 또 어떻습니까. 잘 읽어 잘 살아가는 게 이 책의 주제인 걸요. 책 속 저자의 글귀가 편집하는 내내 맴돌더군요. 마침 라임도 딱 들어맞네요. Read Well, Live 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