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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동 사람들

Description:...

 칼처럼 하늘을 찌르고 있는 고층 빌딩 숲과 재래시장과 낮은 빌라촌이 공존하는 곳,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송파구 잠실동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

《모던 하트》로 2013년 제18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정아은의 신작 장편소설 《잠실동 사람들》이 출간되었다. 전작이 서른일곱 헤드헌터의 일상을 통해 학벌이 계급으로 작동하는 사회를 그렸다면, 신작 《잠실동 사람들》은 계급을 상승시킬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인 ‘교육’을 좇는 부모들과 ‘교육’으로 먹고사는 학교 선생님, 원어민 강사, 과외 교사, 학습지 교사, 어학원 상담원 들이 벌이는 분투기, 더불어 불공정한 출발선이 시작되는 공간사까지 아우르는 소설이다.

배경이 ‘잠실’인 데에는 “강남 3구 중 하나”이며 “서민들의 주거지였던 잠실 주공아파트 단지가 철거되고 그 자리에 재건축된 고층 아파트”라는 점에서, ‘강남’에 속하고 싶은 욕망과 아무나 속할 수 없는 ‘중산층’이라는 계급 사회를 실감나게 그리면서 공감을 얻어낸다. 즉 이 작품 속 ‘잠실’이란 “지배계급의 신분과 공간으로 진입하기 위해서 그들이 스스로의 경제적 능력을 활용해 찾아낸 도약대”와 같은 공간이다. 부모들이 자신의 희망인 아이들을 태운 채 대치동으로 열심히 나르는 일상의 공간은 이렇게 은밀하고도 “거대한 상승 욕구”를 비추는 얼음판이 된다.

이처럼 ‘잠실’이라는 특정 공간에 등장하는 각각의 인물들이 저마다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이어가는 구성은 인물들에 대한 몰입도를 높인다. 문학평론가 서희원은 “좋은 다큐멘터리 작가가 그렇듯이 최대한 대상에 밀접한 상태로,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며 관찰”한다고 평했다.

정아은의 《잠실동 사람들》은 단순히 아이를 매개로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려는 부모의 이기심을 다루지 않는다. ‘교육’시장에 아슬아슬 매달려 있는 대학생, 주과목이 아니라서 홀대받고, 태어나서 줄곧 교육 서비스 대접에 익숙한 아이들과 학부모를 매일 마주해야 하는 선생님, 모욕감, 치욕감을 견디면서 엄마들 눈치를 살피는 과외 교사와 학습지 교사, 입시에 악착같이 매달린 듯 보이지만 아이의 미래에 대한 확신보다는 떠도는 소문에도 쉽게 흔들리는 갈대 같은 부모 등 다양한 삶의 주체들이 살아가는 생의 단면을 제시한다. 또한 엄연히 학벌과 거주지로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지고 그 선을 벗어나는 반전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 현실을 속도감 있게 그려낸다.

이렇듯 작가가 묘사하는 이 사회의 민낯은 잠실동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싱크홀’보다도 더 거대한 싱크홀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가슴에 뚫려 있고, 그로 인해 우리의 삶이 되돌릴 수 없을 만큼 붕괴하였다는 사실(서희원)”을 상기시킨다.

모든 것은 일상적이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그 일상이 문제다

《잠실동 사람들》의 중심에는 초등학교 2학년 같은 반 아이들을 둔 지환엄마, 해성엄마, 경훈엄마, 태민엄마가 있다. 대출 한계를 채워가며 무리해서 잠실 아파트로 들어오거나 미국 유학, 직장을 포기하고 아이 교육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엄마들이다. 아이들 옆에서 전전긍긍하면서도 자신의 미래를 포기하는 것이 옳은지 혼란스럽기도 하다.

이것도 아이들의 복지와 엄마의 일이 상충되는 부분이다. 아이들을 학원으로 돌리려니 돈만 들고 제대로 된 교육을 못 시킬 것 같고, 직접 끼고 가르치려니 엄마가 일을 많이 못 하고. 결국 육아와 여자의 일은 서로 반목할 수밖에 없는 걸까. 희진은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는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자신이 안타깝다. 펼쳐진 탄탄대로를 버리고 페이닥터로 주저앉은 것도 결국 육아 때문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한번 육아를 손에 잡고 나니 도저히 놓을 수가 없다.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당장에 아이를 끌고 들어가는 엄마들과 달리 장대비로 바뀔 때까지 아이를 빗속에 방치한 채 모여 수다를 떠는 조선족 시터들의 모습을, 제 키보다 높은 미끄럼틀에 올라가 무섭다고 우는 네 살짜리 아이에게 혼자 내려오라고 친절하게 말한 뒤 앉아서 스마트폰에 고개를 처박고 있는 조선족 시터의 모습을 보아버린 뒤로는 남에게 아이들을 맡길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의사로서 성장하기는 다 틀린 걸까. 이대로 남의 병원에 정부 보조금 늘려주는 페이닥터나 하다 끝나는 걸까. 수백 번도 더 해왔던 생각이 다시 머릿속을 채웠다. 영원히 결론 내지 못할 해묵은 문제가. (280쪽)

한편, 잠실동에 속해 있지 않은 사람들은 잠실 고층 아파트를 바라보는 속내가 더 복잡하다. 삼성동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자란 과외 교사 김승필과 잠실동에서 원주민으로 자란 학습지 교사 차현진이 지닌 이주의 역사는 서울 강남권 개발의 역사와 맞물린다. 상전벽해라는 말처럼, 한순간 모든 풍경이 변하는 사회의 속도는 개인이 쫓아가기엔 너무나 벅차고 과거 또한 빠르게 잊힌다. 현재의 고층 아파트를 보며 한 번도 아파트에 살아본 적 없던 김승필은 자신도 모르던 열망이 솟구친다.

낡은 아파트를 허물고 재건축해 지었다는 이 세 단지의 고층 아파트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그는 사람들이 왜 아파트, 아파트, 타령하는지 알게 되었다. 걸어 다닐 때 불안하지 않은 곳, 즐비하게 주차된 차들 때문에 신경전을 벌이지 않아도 되는 곳. 그것이 아파트였다. (중략)

많이 벌어서 이런 아파트를 살 것이다. 착하고 잘 웃는 여자를 만나 살림을 꾸릴 것이다. 아이를 낳아 이런 유모차에 태우고 다닐 것이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웃음이 나왔다. 사실 아파트가 미치도록 갖고 싶다거나 재혼이 너무너무 하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승필은 그 생각을 계속하기로 했다. 그런 열망이 생겨난 게 어딘가. 집에 틀어박혀 떠나버린 여자를 생각하며 시간을 죽이는 것보다 백배는 나을 것이었다. (288-289쪽)

유년기의 추억이 사라져버린 고층 아파트를 바라보는 차현진은 씁쓸하다. 허울 좋은 재개발은 집값을 천정부지로 올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을 동네 밖으로 축출했다.

현진은 두리번거리며 자신이 살았던 동이 어디에 있었는지 가늠해보려 했지만, 그게 지금의 분수대 자리에 있었는지, 227동 자리에 있었는지 도통 구분이 되지 않았다. 과거에 무엇이 있었는지 알려주는 표식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아서, 리센츠가 주공아파트 2단지를 재건축한 것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없었다면 지나가다 봐도 여기가 자신이 자란 동네라는 걸 모를 것 같았다. 옆에 있던 1단지와 건너편에 있던 3단지까지 엘스, 트리지움이라는 초고층 아파트로 탈바꿈해 있어 과거를 떠올리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나마 중학교와 고등학교 건물은 예전 모습 그대로여서, 그 자리를 바탕으로 자신이 살았던 동을 어렴풋이 가늠해볼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걸까. 이럴 거면 아예 동 이름도 바꾸지, 왜 그대로 잠실2동이란 이름을 유지하고 있을까? 현진은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아예 동 이름을 바꾸고 중・고등학교까지 싹 쓸어버렸다면 이 아파트가 자기가 살았던 아파트란 생각도 들지 않았을 테고, 고층 아파트를 올려다보며 억하심정을 갖지도 않았을 것 아닌가. (245-246쪽)

정아은 소설가는 가진 사람들과 갖지 못한 사람들이 나뉘기 시작한 지점을 찾고, 시간이 흐를수록 견고해져만 가는 계급사회를 인물들의 입을 통해 서술한다. 중심부에서 밀려난 제각각의 사연과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이들의 이야기는 잠실동 초고층 아파트 안의 삶과 비교되면서 소설 안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특히 지환엄마, 해성엄마의 집에서 도우미 일을 하는 최선화는 아이 셋을 둔 엄마이면서 가장이기도 하다. 풍족하지 않아도 부족함 없이 살던 일상은 어느 날 동네가 뉴타운으로 지정되면서 작은 균열이 일어난다. 이주 대신 새 아파트의 임대주택으로 입주했는데, 아이들은 학교에서 놀림을 받게 되고 전파상을 하던 남편이 단골이었던 이웃들을 잃은 것이다. 그 과정에서 첫째 화영이는 미혼모가 되었고, 둘째 서영이는 집을 나가고 연락두절 상태다. 언제부터 잘못되었던 것일까, 동네를 옮기지 않았다면 하고 선화는 늘 되짚어보지만 일어난 일은 돌이킬 수 없다. 한편 집을 나온 뒤, 근근이 버티고 있는 대학생 이서영에게도 앞날이란 암울하기만 하다.

나는 변호사가 될 수 있을까. 청운의 뜻을 품고 대학에 들어올 때만 해도 로스쿨 등록금을 걱정했지, 대학 등록금을 걱정하진 않았다. 올 초에 하남 집을 뛰쳐나온 뒤, 이것저것 아르바이트를 했다. 과외, 편의점 알바, 고깃집 서빙 등 손에 잡히는 일을 닥치는 대로 했지만 돈은 좀처럼 모이지 않았다. 목이 터지게 아이를 가르치면 과외 알선업체에서 과외비의 반에 가까운 금액을 떼어갔고, 편의점 일은 시급이 너무 적었다. 고깃집 일은 시급이 높은 편이었지만 일을 마치면 너무 피곤해서 학교 공부를 할 수 없었다. 이렇게 벌어도 카드 회사에서 빌린 대출금에 대한 이자를 물고, 책값을 대고, 방세에 식비와 교통비, 통신요금을 내면 남는 게 없었다. 대학의 하루하루가 모두 돈으로 메워가는 시간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무렵, ‘알바’를 하기 시작했다. 낯선 남자의 몸을 견뎌야 하는 데에 회의가 들면 엄마와 언니를 생각했다. 구질구질하고 고단한 삶. 평생 그렇게 살 것인가. (370-371쪽)

이 외에도 ‘빌라 사는 애들’ 운운하며 학원을 평가하는 엄마들을 대하는 어학원 상담원 지윤서, ‘눈이 파란 백인’으로 학부모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원어민 강사 지미 더글라스, 학력과 경력을 속인 채 실력만으로 평가받길 원했던 과외 교사 김승필, 자신의 아들은 집에 두고 잠실 엄마들의 집을 돌아다니며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습지 교사 차현진 등의 시선은 “동(洞)이라고 지칭하기보다는 ‘성(成)’이라고 부르는 것이 좀 더 적절한” 잠실동 고층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비춘다.

《잠실동 사람들》을 통해 정아은은 ‘무엇’을 위해 달리는 줄도 모르고 뒤처지지 않기 위해, 그 안에 소속되고자 하는 절실함을 서술한다. 생존을 위해 존재를 부정당하는 치욕감, 모욕감, 불쾌감을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의 그림자까지 생생하게 그리는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독자는 어느새 기억을 잃고, 맹목이 되어가는 우리를 정직하게 바라보는 거울 같은 시선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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