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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 부산, 이승만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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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직선제 개헌의 ‘팩트’를 파헤친다

대한민국 70년에서 모두 아홉 차례 이루어진 헌법개정(이하, ‘개헌’)의 역사를 돌아보면, 우리 국민이 선호하는 권력구조는 대통령중심제, 대통령 선출 방식은 국민 직접선거(이하, ‘직선’)인 것임이 분명하다. 1948년의 제헌헌법은 국회 간접선거(간선)제의 대통령중심제로 시작했다. 간선제를 직선제로 돌린 개헌이 헌정사상 세 번 있었는데, 각각 1952년의 제1차 개헌, 1963년의 제5차 개헌(제3공화국 헌법), 그리고 1987년의 제9차 개헌(현행헌법)이 그것이다. 집권세력이 주도한 개헌이든 떠밀리듯 한 개헌이든, 직선제 개헌 후 첫 대통령선거는 언제나 당시 집권세력의 승리(이승만, 박정희, 노태우 당선)로 끝났다는 사실도 결코 사소하지만은 않은 트리비아(trivia)다.

1952년의 1차 개헌 또는 대한민국 첫 직선제 개헌은 그러나, ‘부산정치파동’이라는 그다지 명예롭지 못한 이름으로 주로 기억된다. 당시는 6.25전쟁의 와중, 부산은 전후(前後) 3년간 전시(戰時) 임시수도일 참이었다. 개헌은 국회 의결로 이루어졌으나 당시 국회의원들의 의사결정이 그다지 자유롭지 못했다고 믿는(또는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어서다. 그런데 개헌 직후 치러진 우리나라 최초 직선제 대통령선거(제2대)에서 현직 대통령 이승만이 74.6퍼센트라는 압도적인 특표율로 당선됐고, 이는 역대 열두 번 치러진 직선 중 최고 기록이라는 사실은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부산정치파동, 또는 제1차 개헌, 또는 최초 직선제 개헌 - 1952년 그해 초여름 부산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가려지거나 과대포장된 팩트는 무엇인가? 팩트보다 ‘진실’이라 해야 있어 보이는 시대, <1952 부산, 이승만의 전쟁>(주인식 저, 기파랑 간, 2018)은 1차 개헌의 전말을 ‘팩트’ 위주 정공법으로 파헤치는 실록(實錄) 드라마이다. 팩트를 이길 ‘진실’이 따로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진영논리로 왜곡되거나 소홀히 다루어지고 있는, 대한민국을 만든 중요한 사건과 인물들을 밝은 무대로 이끌어내고, 대중이 접근하기 쉽도록” - 66년 전의 팩트를 추적하기 위해 저자는 국회도서관의 온갖 기록들을 넘기고 당시 관련 인사들의 회고록들을 행간까지 뒤졌다. 현직 방송PD인 저자가 60여 년 전 사건들을 6.25 발발 당일부터 시간순으로 꼼꼼하게 펼쳐 나가는 필치는 마치 탄탄하게 구성된 TV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착시마저 불러일으킨다. 헌정사 초창기를 기억하거나 관심 가졌던 사람이라면, 목차와 연표(부록)만 훑어보아도 ‘아, 그때 그랬지!’ 하고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날 정도.

공산군, 안티 국회, 미국의 물밑작전에 맞서 싸우다

제1대 제헌 국회의원의 임기는 2년, 초대대통령 임기는 4년이었다. 건국 2년이 채 안 된 시점에 침략전쟁을 당하고, 포화 속에서 탄생한 제2대 국회는 반(反) 이승만 일색이었다. 피란지에서 대통령 임기 만료를 앞둔 이승만은 국회 간선제로는 승산이 없었다. 하지만 국민 대다수는 이승만을 국부(國父)로 숭앙(崇仰)하던 시절. 직선제 개헌은 국내정치적으로 재선(再選)을 위한 이승만의 승부수였다. 제1차 개헌의 첫 번째 팩트다.

미국도 이승만에 우호적이지만 않았다. 서구식 민주주의를 익히고 반공 사상이 투철한 이승만을 자유세계의 보루로 삼고 지원하던 미국이지만 휴전을 한사코 반대하는 고집불통 늙은이를 대체할 ‘차기’를 모색할 때가 됐다. 그러나 미국은 유엔을 대표하여 한국과 대(對) 공산 전쟁 연합작전의 파트너였고, 노골적인 내정 간섭은 천만부당한 일이었다. 이승만은 전쟁이나 다름없는 전격적 개헌과 재선으로 미국의 입을 닫아 버렸고, 그 힘을 바탕으로 공산 침략군에 맞서 자유 대한민국을 지키고, 미군의 잔류를 얻어 내는 데 성공했다. 제1차 개헌의 두 번째 팩트다.

다른 세력들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안티 이승만으로 똘똘 뭉친 국회 내 야권의 반발, ‘차기’ 또는 그 아래 한 자리를 상정한 야권의 장면과 김성수, 여권의 장택상과 이범석의 물밑 암투. 대한민국을 위한 결정적인 행운은, 어쩌면 5.16보다 9년 앞선 이때 우리나라 최초의 군사쿠데타가 일어났을 수도 있었을 것을, 군 스스로 자숙했다는 사실이다. 피란지의 6.25 기념식장에서 연설하는 대통령의 뒤에서 저격범이 권총을 겨눈 순간(불발로 미수), 30대 중반 박정희(당시 대령, 육군본부 작전차장), 그보다 열 살 어린 정치 새내기 김영삼(장택상 비서) 등의 사진자료는 덤이다. 더 이상은 스포일러.

양날의 칼, 민의(民意)를 다시 생각한다

“나는 처음 헌법을 만들 때부터 국민들이 대통령을 직접 뽑아야 한다고 했어. 그때 많은 사람들이 한국 국민들은 아직 민주주의에 익숙하지 않다고 했지. 미국 사람들조차도 간선제가 맞다고 했어. 그래서 내가 할수없이 동의를 했던 거야. 그러나 그건 조건부 동의였어. 한국 국민이 민주주의를 할 만한 능력을 보여 주게 될 때에는 그 권리는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단서로 말이야. 그런데 바로 지금 그럴 때가 됐어. 이제는 대통령 선출권을 국민에게 돌려줘야 해!” (이승만 발언, 82-83쪽)

“물론 민주주의 체제라는 것이 효율적으로 보이지 않을 때도 있겠지요. 그러나 장기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이익이 되어 돌아오는 것이 민주주의의 특징이 아니겠습니까? 국민들은 기본적으로 올바른 방향을 선택하니까요.” (로버트 올리버 발언, 52쪽)

어떤 세력은 권력을 위해 직선제에 기댔고, 또 어떤 세력은 간선제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국민이 이번에도 현명한 판단을 했다”고 반기는 승자의 이면에, “국민이 어리석어서”라는 울분을 차마 표출 못 하고 속으로 삭이는 패자도 없지 않을 터다. 직선제나 민의(民意)는 절대선인가? 또는, ‘선과 악을 넘어서’ 있는 그 어떤 것인가? 열 번째 개헌을 둘러싸고 저마다 다른 계산으로 민의를 들먹이는 시대에,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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