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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공간에서 너를 그린다

세월호참사 10년, 약속의 자리를 지킨 피해자와 연대자 이야기

Description:...

■ 책 소개

이 전자책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KPIPA)의 <2024년 전자책 제작 지원 사업> 선정작입니다

“이곳에서 기억은 빛을 잃지 않았다”

팽목항에서, 광화문 광장에서, 세상의 곳곳에서

노란 리본의 약속을 지켜온 사람들, 그 10년의 여정

“‘기억의 방’은 한을 저장하는 창고가 아니고,

상처가 아문 자리에 새살이 돋아나는 신생의 방이다.” - 김훈(소설가)

2014년 4월 16일, 그날의 참담한 소식과 이해할 수 없는 현실에 우리는 거리로, 광장으로 나와 함께 외쳤다. 그 연대의 힘으로 특별법을 제정했고, 선체를 인양했으며, 무책임한 정부를 탄핵했다. ‘한국 사회는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처럼, 세월호는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광장에 모였던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갔고, 기억을 약속했던 공간들은 하나둘 사라져 갔다. 진상규명은 여전히 미완, 책임자들은 속속 무죄를 판결받았다. 그리고 2024년, 또다시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세월호참사 10주기’의 소식을 듣는다. 빠른 세월에 놀라기도 잠시, 많은 이들이 잊거나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도 약속의 자리를 지켜온 사람들이 이토록 많다는 사실에 다시 놀란다.

《기억의 공간에서 너를 그린다》는 세월호참사 10년의 시간을 통과해 온 기억공간들을 중심으로 세월호 생존자, 유가족, 활동가들을 인터뷰하고, 안전사회를 위한 다음 걸음을 고민하는 책이다. 세월호참사를 증언하는 여러 기록에서 잘 다뤄지진 않았으나, 피해자와 연대자들의 광장이자 집이자 쉼터였던 ‘세월호 기억공간’을 재조명하고 그 필요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세월호참사 이후에도 이태원참사, 오송 지하차도 참사 등 우리 사회에 끔찍한 참사는 반복되어 왔다. 변한 게 없다고 느껴질지 모르나, 기억공간의 문을 열고 흔적을 쫓는 글을 읽다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월호가 그려온 선명한 변화의 궤적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이 책은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4.16연대, 4·16재단이 주축이 되어 발족한 ‘세월호참사 10주기 위원회’의 기획으로 송경동 시인이 직접 각 분야에서 구술, 인터뷰 활동을 해온 10인의 작가를 모았다. 10년 전의 약속을 되새기고 앞으로의 10년을 그리겠다는 다짐을 응원하기 위해 박래군 4·16재단 상임이사가 서문을, 김훈 소설가가 추천의 글을 보탰다. 작가, 생존자, 유가족, 활동가들이 모아온 10년의 사진 또한 선별해 실었는데, 이는 지나온 세월만큼이나 곳곳에서 커져버린 기억의 공백을 생동감 있게 메우려는 시도이다.

이 책에 참여한 인터뷰이들은 자신이 걸어온 여정을 성실히 증언한다. 세상이 그날을 잊고 지우려 할 때, 내 일처럼 기억공간을 지켜낸 이유에 대해, 살았다는 죄책감과 책임감 사이에서 ‘나’를 찾아간 여정에 대해, 가족을 떠나보낸 그리움과 미안함을 삭이며 그날의 진실을 쫓아온 시간에 대해 말한다. 이야기는 배가 가라앉아 있던 바다처럼 어둡기도 했으나, 10년째 다시 찾아오는 봄처럼 곧 피어날 희망을 품기도 했다. 꿋꿋이 약속의 자리를 지켜온 이들의 이야기는 지난한 세월에 무력함을 느꼈던 이들에겐 다시 나아갈 용기를, 참사를 잠시 잊고 지냈던 이들에겐 다시 기억의 여정에 참여할 계기를 마련해 준다.

하루에 하루를 보탰더니 10년

나와 내 가족, 내 이웃을 위한 안전지대를 만들다

어떻게 10년이란 긴 세월 동안 참사를 ‘나의 일’로 여기고 변화의 약속을 지켜낼 수 있었을까. 1부 ‘10년의 기억을 담은 공간들’에서는 수많은 방해와 반대에도 자리를 지킨 10곳의 기억공간을 둘러본다. 세월호 선체가 거치된 목포 신항만, 두 번의 임시 이전 끝에 자리를 잡은 단원고 4·16기억교실, 설립 반대 압력에도 착공을 앞둔 4·16생명안전공원 등 사람들의 발길은 뜸해졌지만 여전히 기억의 빛을 간직하고 있는 귀중한 공간들이다. 기억공간을 지켜온 활동가들의 구술과 이곳의 사진들을 따라 읽다 보면, 함께 노란 리본을 만들고, 명절을 지내고, 수다를 떨고, 맘 편히 웃고 우는 세월호 생존자, 유가족, 활동가의 얼굴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공간에는 잊지 않겠다는 의미가 있잖아요. 사고, 참사가 반복되는 건 잊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라는 한 활동가의 말처럼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기억의 공간’의 역할이 얼마나 큰지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눈에 띄는 것은 기억공간을 운영하고 지켜온 활동가들의 사연이다. 이들 중에는 참사의 피해당사자도 있지만, 대부분 참사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일반 시민이기에 활동의 어려움과 별개로 “관종이냐며 비아냥”거리거나, “네가 하지 않아도 세상은 바뀌고 있다”는 빈정거림 또한 견뎌야 했다. 하지만 이들은 이런 말과 태도를 지적하며 기억공간을 지키고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것은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일’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세월호 선체 곁을 지키던 김애숙은 입대한 아들이 근무하는 연평도에 포격전이 있고 난 뒤, 아들에게 받은 문자를 보여준다. “엄마, 살아서 휴가 나가서 만나요.” 그때 김애숙은 세월호 부모들을 떠올렸다. 또 그 무렵 아들 또래의 아이들이 이태원에서 희생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니까 세월호도 이태원도 내 일”일 수밖에 없었고 아이와 살아가기에 ‘안전한 사회’가 아니라는 걸 다시금 느꼈다. 이처럼 이들의 구술 곳곳에는 ‘참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당연한 진실이 녹아 있다. 쉽게 남의 일이라 치부하거나 이제 그만 잊으라고 강요하는 이들에게 활동가들은 “이런 상태라면 세월호는 20년 후에도, 30년 후에도 진행 중일 것”이라 답한다. 실제로 세월호 이후 이태원참사, 오송 지하차도 참사 등을 우리 사회는 경험해 왔다. 연결의 감각과 연대의 행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도 하게 된다. 망각하지 않고 10년을 견뎌온 이들에게 특별한 용기가 있었던 걸까. 그냥 ‘가야 할 것 같아서’ 팽목항으로 달려갔던 김애숙은 “도시락을 유가족에게 전달하는 것 말곤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고, 생존 학생을 위한 쉼터 ‘쉼표’를 운영하는 장성희는 위로조차 어려워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느낌”으로 지냈다고 한다. 그래서 광주시민상주모임의 정기열은 “옆에서 걸어만 주자는 마음으로 며칠 동안 말도 안 하고 종일 걸었”고, 노란리본공작소의 양승미는 “손이라도 보태야지 하는 생각으로” 10년간 리본만 만들었다고 했다. 결국 특별한 능력, 별다른 방법 없이 ‘하루에 하루를 보태며’ 엮어온 세월이 지금의 10년을 만들어왔다. 마침내 4·16재단의 국민발기인 박강희는 깨닫는다. “투사처럼 거창하지 않아도 그분들한테 우리 같은 시민이 기억하고 있다는 걸 알려드리는 게 내 소임이구나.”

1부의 마지막에서 희정 작가는 이들의 말을 쭉 듣고 난 뒤 이렇게 말한다. “안전한 공간이군요.” 그의 말처럼 서로의 이웃이 되어줄 때 우리는 안전하다. 이들이 10년간 애써 공간을 지켜온 이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1부의 말들을 성실히 들어왔다면 공간을 지키는 일이 “영구히 슬픔에 빠지고자 하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이웃이 되어주자는 약속을 기억하는 일”이라는 것을, 특별한 능력과 별다른 방법이 없더라도 그 곁을 함께 지키고자 노력하는 것이 안전사회로 향하는 첫걸음임을 깨닫게 된다.

“너에게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게”

떠나간 이들에게 답해줄 진실을 모아온 시간

2부 ‘10년의 기억을 품은 사람들’은 참사의 피해당사자인 생존자, 유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들은 참사 이후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안전사회의 기틀을 마련하는 동안 “시체팔이” 등의 혐오 표현을 견디고, “빨대 꽂는 인간들”에게 뒤통수를 맞고, “자식 잃었는데 웃어?”라는 시선에 상처받았다. 2부는 이들의 진솔한 고백을 꼼꼼히 옮겨 적으며 그동안 세월호 피해자들을 가리고 있던 오해의 안개를 걷는 데 집중한다. 하지만 이는 결코 ‘참사 피해자’라는 정체성을 강화하거나 일반적인 피해자상을 그려내고자 함이 아니다. 단원고 생존자 유가영은 책 속에 뉴질랜드로 워킹홀리데이를 갔던 이야기를 썼더니 “딸기농장에서 일한 얘기는 왜 썼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밝힌다. 그동안 우리는 세월호 피해자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강요해 온 게 아닐까? 이 책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피해자 각각의 묵직하지만 반짝이는 이야기를 꾸밈없이 담아내고자 했다.

예를 들면 2부의 인터뷰이로 참여한 단원고 생존자 유가영, 설수빈은 비슷하면서 다른 생각들을 자유롭게 펼쳐 놓는다. 유가영은 지난해 《바람이 되어 살아낼게》라는 책을 출간하며 “나름대로 마음 정리를 다 끝냈기 때문”에 생존자 말하기 모임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반면 설수빈은 친구의 책을 읽지 않은 이유에 대해 “울어버리면 후련해질 수도 있지만, 후련해지고 싶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라고 답한다. 이미 마음 정리를 끝냈거나 혹은 정리하고 싶지 않거나, 그것은 10년 동안 살아남은 자로 살아내면서 그들이 각자 선택한 삶의 방식일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같은 유가족 사이에서도 목격된다. 일반인 유가족협의회 위원장 전태호는 이태원참사 유가족들에게 “죽을 각오로 싸우셔라!”하고 조언하지만, 4·16목공소의 조합원 유해종은 5·18 유가족들의 “조바심 내지 말고 천천히 싸우라”는 조언을 따른다. 이처럼 2부는 피해자들의 각기 다른 삶의 방식과 싸움의 과정에 집중하며, 오히려 그들이 공통으로 추구하는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안전사회 건설’이란 목표로 가는 다종의 길을 조명한다.

그렇다면 11인의 생존자, 유가족들은 막막하고 고단했을 10년의 길을 어떻게 걸어왔을까? 4·16가족극단 대표 김명임은 10년의 시간을 “‘왜?’라고 물어올 너의 궁금증에 답해줄 말들을” 모아온 시간이라 말한다. 이처럼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떠나간 가족에게 답해줄 진실을 쫓고, 들려줄 이야기를 만들어왔다. 투사가 되어 싸우고 광장에서 피케팅을 이어가기도 했지만, 문화적인 방식인 합창과 연극으로 시민들에게 다가가기도, 봉사를 통해 비슷한 처지의 이웃을 보듬고자 노력하기도 했다. 방법은 다를지라도 그 바탕에는 다른 이들은 나와 같은 슬픔을 겪지 않았으면 한다는 다짐과 의지가 깔려 있다. 그래서 세월호참사 피해자들은 이태원참사 유가족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더 싸웠어야 하는데…. 미안합니다.” 이처럼 세월호 피해자들은 반복되는 죽음의 행렬을 막기 위해, 다음 세대에 안전사회를 물려주기 위해 타협 없이 싸워왔다. 더 나아가 어떤 이들은 자기의 연대가 참사 피해에만 국한되지 않음을 내비친다. 단원고 희생자 박성호의 누나 박보나는 ‘기후위기’를 비롯한 우리 사회의 재난들을 언급하면서 기꺼이 ‘우리’가 되고자 하는 마음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세월호 생존자, 유가족, 활동가들이 걸어갈 앞으로의 10년은 어떤 모습일까. 실제로 이들은 “10주기에는 무엇을 할 거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고 했다. 그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그런 질문에 앞서 10주기에 무엇을 할 것인지를 먼저 이야기해 줬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모두 귀 기울여 듣진 못하더라도 이제라도 자신이 품고 있는 기억을 각자의 자리에서 나누고, 기억공간을 찾고, 다시 연대의 힘을 보태주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이들은 말한다. 이 책에 담긴, 앞서 걸어간 피해자와 연대자들의 단단한 뒷모습과 다정한 목소리가 다시 기억의 여정을 시작하려는 이들에게 든든한 길라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 추천의 글

세월호 참사로부터 10년이 지났다. … 여러 세대에 걸쳐서 세습된 구조적 비리와 국가의 기능 마비가 참사의 원인과 배경이었다. 이 심층구조가 밝혀지는 과정은 그날의 현장만큼 고통스러웠으나, 곧 잊혔다. 망각은 산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었고, 편안함 속에서 참사는 거듭되었다. 세월호 이후 10년 동안 대형, 중형, 다발성 소형 참사들이 자고 새면 날마다 잇달았고 사람들은 다치고 병들고 죽고 통곡했고, 잊었다.

이 책은 세월호참사의 희생자, 생환자의 가족들과 그 고통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지난 10년 동안 서로 만나서 얼굴을 마주 대며 말하고 노래하고 위로하고 일하면서 지내온 삶의 기록이다. 이들의 삶은 ‘기억의 공간’들을 중심으로 모여 있다. 내가 읽기에, 이 책에서 아름다운 페이지는 다친 사람들이 만나서 사람의 목소리로 ‘말’을 하면서 삶을 재건하고, 재건된 삶의 힘으로 미래를 지향하는 대목이다. 인간의 목소리에는 인간만이 감지할 수 있는 힘과 울림이 들어 있다. 자음은 목소리의 힘이고 모음은 목소리의 울림이다. … 사람으로부터 사람에게로 울리는 목소리의 힘에 의해 가족들은 고통과 슬픔을 거느리면서 그것을 넘어서 생활로 복귀했고 현실의 철벽에 조금씩 구멍을 뚫어냈다. … ‘기억의 방’은 한을 저장하는 창고가 아니고, 상처가 아문 자리에 새살이 돋아나는 신생의 방이다. 멀리서 바라보니, 배가 가라앉은 바다에 봄이 와 있다. - 김훈(소설가)

지금도 시민들은 곳곳에서 노란 리본을 만들어 나눕니다. 기억의 장소들이 팽목항, 목포, 제주, 서울, 안산, 인천 등에 여전히 유지되고 운영되고 있습니다. 세월의 풍화작용을 이겨내고, 흔적을 지우려는 세력들을 이겨내면서, 온갖 모욕과 핍박을 받아내면서도 이토록 긴 세월을 피해자만이 아니라 시민들과 함께 지켜냈던 적은 없었습니다. … 이들이 만들어가고 있는 세상을 열린 마음으로 읽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박래군(4·16재단 상임이사)

■ 기획

세월호참사 10주기 위원회

참사 10주기를 맞아 4월 16일의 약속을 되새기고 진실과 책임, 생명 존중과 안전사회를 향한 의지를 다시 모으기 위해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4.16연대, 4·16재단을 주축으로 발족하였다.


■ 책 속에서

멀리서 기울어진 배가 보이기 시작할 때부터 유가족들은 울음을 쏟아냈다. 김애숙 님은 ‘가슴이 먹먹’했다. 말을 건넬 수조차 없었다. 부랴부랴 준비해 온 컵라면과 도시락을 유가족에게 전달하는 것 말곤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런 와중에 오영석 님의 엄마, 영석 엄마는 봉사자들에게 부탁해 여섯 개들이 컵라면 박스를 버리지 못하게 했다. 밤이 되면 컵라면 박스를 쟁반 삼아 보온병에 든 커피와 초코파이를 신항 북문에 있는 전경들에게 가져다줬다. 출입을 막고 신분을 확인하면서 북문 앞에 늘 서 있는 그 전경들에게. 3월의 바다는 아직 춥다면서.

“기억교실에 오신 분들이 ‘미안하다. 미안하다. 늦게 와서 미안하다. 그렇지만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이런 글을 많이 남겨요. 그런 분들에게 저는 지금 왔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해요. 잊지 않았다는 마음을 행동으로 보여주신 거라고. 늦게 와서 미안하다고 하지 마시고 또 오시라고 해요.”

“지금 고 김용균 노동자 어머니 김미숙 활동가님이 평화쉼터에 와 계세요. 어머님은 ‘세월호가 부럽다’고 하세요.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이 있기 때문에. 산재로 죽어간 청소년, 청년들은 기억공간을 만들 수가 없으니까 쉽게 잊혀버린다는 거예요. 공간에는 잊지 않겠다는 의미가 있잖아요. 사고, 참사가 반복되는 건 잊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삼풍백화점 붕괴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는데, 추모비가 공원 구석에, 보이지도 않는 곳에 있다고 하잖아요. 너무 충격적이죠.”

다른 사람의 눈에는 아무 관련도 없는 김우철 님이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니는 것이 의아하게 보일 수도 있다. 간혹 이제 그만 좀 하라며 그의 가방에 달려 있는 리본을 떼려는 사람도 있었다. 혹은 ‘관종’이냐며 비아냥거리는 이도 있었다. “관심받고 싶어서 그러냐는 사람도 있어요. 뭐, 상관없어요. 어쨌든 리본을 보는 사람은 기억하잖아요. 한 번이라도 더 세월호를 떠올릴 거고,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겠죠. 저는 그런 차원에서 리본이라도 계속 달고 다니자, 그런 마음이에요.”

예배팀 이야기를 하던 그가 “세월호 가족들이 마음 편하게 웃을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게 기쁨이에요”라고 했을 때, 나는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를 말했다. “안전한 공간이군요.” 서로가 이웃이 되어줄 때 우리는 안전하다. ‘조만간’ 세워질 생명안전공원이지만, 오래전부터 그곳에는 서로를 이웃 삼아 안전지대를 만들어 온 사람들이 있었다. 세월호참사를 기억하는 공원을 세우려고 하는 것은 영구히 슬픔에 빠지고자 하는 일이 아니다. 서로의 이웃이 되어주자는 약속을 기억하는 일이다.

“저는 회사 사람들 모두가 제가 세월호 생존자라는 걸 알게 되는, 그런 상황은 원하지 않거든요. 또 이게 특혜라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 생존자 유가영이 아니라 그냥 회사 동료 유가영. 이렇게 봐줬으면 좋겠는데. … 생존자라는 정체성이 나에게 엄청 크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하지만 살아 있으니까 할 수 있는 게 많았다, 하는 건 있어요. 그래서 막 기쁘다가도 친구들 생각 한 번 하게 되고. 내가 지금처럼 성인이 되고 취직을 하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도 살아 있으니까 할 수 있다.”

자신의 속도대로, 스스로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일상을 사는 김정화 님은 ‘일상으로 돌아가는 시간’은 없다고 말한다.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돌아가는 순간을 정하는 건 오로지 자신만의 몫이라고. 그러니 각자가 가진 속도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이다. “내가 이렇게 웃고, 떠들고, 즐거운 일상을 산다고 해서 우리 빛나라를 잊은 게 아니잖아요. 이건 내 삶이에요. 안전한 사회를 만들고 싶은 마음으로 작은 것부터 조금씩 해나가고, 다시 내 삶을 사는 게 먼저 떠난 우리 딸에게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뭐든지 항상 이유가 궁금했던 아이라, ‘엄마, 왜?’ 하고 자신이 떠나야 했던 이유를 물을 것 같은 거예요. 올라가면 그 물음에 어떻게 답을 해줘야 될까요? … 뭐든지 얘기를 해줄 수 있는 걸 가지고 가야 해요. ‘엄마 참 열심히 살았어…. 그러니까 네가 원하는 듣고 싶은 결과가 좀 부족하더라도 좀 봐줘. 근데 엄마가 뭔가를 일부러 안 하거나 어떤 활동을 할 때 게으름 때문에 안 한 거는 정말 없었어. 부모로서 부끄럽지는 않았어.’ 그 말을 하고 싶은 거죠. 그것 하나를 붙잡고 꿋꿋하게 가는 거예요.”

“귀에 막 들려 와. 자식 잃었는데 웃어? 이런 소리가 많이 들려서 너무 싫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야 되는데 이게 여기(가슴) 차 있는 거야. 그러니까 화만 나는 거야. 참기가 너무 힘들어. 바깥에서는 어떤 말도 못 해. 집에서 농담 같은 것도 힘들어. … 10년 됐지만 똑같아. 죽기 전까지는 똑같을 것 같아. 그나마 여기 오면은 담아놓지 않고 말을 할 수 있잖아. 유가족이니까. 어떤 말을 해도 넘어가. 농담도 하고 웃기도 하고. 여기서는 다 얘기해요. 시시콜콜한 얘기들.”

왜 우리가 여기에 와서 눈칫밥을 먹어야 하나. 서운하고 속상했지만 계속 그 상태로 있을 수는 없어 먼저 다가갔다. 그리고 슬픔을 감추는 법을 익혔다. “엄마들끼리 다짐을 했어요. 간담회 가면 울지 말자고요. 다시 못 올지도 모르는, 굉장히 어렵게 만든 자리인데 울다 보면 하고 싶은 얘기도 못 하고 나중에 후회하거든요. 자식 핑계로 보험금 많이 받았으면 놀러나 다니지 왜 이런 데 왔느냐 같은 막말을 들을 때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나와요. 그럴 때도 넉살이 좋아야 한다고 되새기면서 울음이 나오려고 해도 꾹 참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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