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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유교화 과정

신유학은 한국 사회를 어떻게 바꾸었나

Description:...

부계중시, 장자우대 상속, 제사의 관행은 언제 형성되었으며,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다시 출간되었으면 하는 책 1순위

- 로쟈(이현우, 서평가)


부계중시, 종손의 가계계승, 장자우대상속, 제사의 관행들은 17세기에 형성되어 20세기까지 존속한 한국 사회의 특징이다. 우리는 소위 ‘전통’이 되어버린 이것이 아주 특별한 발달 과정을 거친 최종 결과물이라는 사실에 대해 아예 모르거나 종종 잊는다. 한국의 유교화 과정은 정말로 획기적인 것이었으며 거대한 변화였다.

‘한국학의 대가’ 스위스인 마르티나 도이힐러(런던대 명예교수)가 내놓은 『한국의 유교화 과정-신유학은 한국 사회를 어떻게 바꾸었나』는 15~16세기 당시 사회에 신유학(성리학)의 도입과 정착이 지속적으로 강력히 추진된 동기는 무엇이었으며, 신유학이 사회 구조에 미친 영향은 어떠했는가에 대한 공백을 메운 최초의 본격 시도였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업적으로 평가받는 책이다.

20여 년이 걸린 마르티나 도이힐러의 역작은 약 150여 종이나 되는 사료와 290여 편의 각종 저작을 인용한다. 특히 사회인류학과 교류하면서 친족, 조상 숭배, 가계계승, 상속, 결혼, 상장례 등 6개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고려 초기에서 조선 후기까지 한국의 역사를 통찰하는 가운데 매우 중요한 사실에 도달한다. 1392년 조선의 건국세력에 의하여 본격적으로 추진된 유교 사회로의 전환이 이후 약 250년에 걸쳐서 점진적으로 완성되었고, 그 결과 17세기 중반에 이르러 조선의 양반 사회가 적장자 중심의 문중 사회로 재편성되었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렇게 재구성된 조선 사회는 고려시대의 사회 구조와 확연히 달랐고, 유교사상이 중국 사회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지만 한국에서는 세계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힘들 정도로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마르티나 도이힐러 교수는 『한국의 유교화 과정』 출간에 맞추어 너머북스를 방문한 자리에서 새로운 저서에 대한 계획도 밝혔다. 4~5세기 신라시대부터 한말까지 한국 사회의 기본 단위였던 고유한 씨족 형성과 발전을 구명한 『조상의 눈 아래에서 Under the Ancestors' Eyes: Kinship, Status, and Locality in Pre-modern Korea』를 하버드대 아시아센터에서 출간할 예정이다.

도서평론가 로쟈(이현우)가 “다시 출간되었으면 하는 1순위”라 한 이 책은 2003년의 초판이 절판된 이후 저·역자의 노력을 더하여 출간한 개정판이다. 소농사회론을 주창한 미야지마 히로시의 『나의 한국사 공부』, 고려-조선왕조 교체의 역사적 의미를 밝힌 존 던컨의 『조선왕조의 기원』에 이어 2013년 너머북스가 한국사의 새로운 이해를 찾아 펴내는 해외 석학 3부작의 마지막 책이다.


거대한 전환, 신유학은 한국 사회를 어떻게 바꾸었나?


마르티나 도이힐러는 조선왕조의 건국을 단순한 왕조 교체로서가 아니라, 신유학의 이념에 입각한 사대부들의 이상사회 건설을 향한 의지의 표현으로 보고 있는데, 여기에 바로 『한국의 유교화 과정』의 독특한 점이 있다. 조준과 정도전을 비롯한 조선 건국의 주역들이 의식적으로 과거의 전통과 단절되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 했다는 점에서, 저자는 조선왕조의 등장을 중요한 역사적 분기점의 하나로 파악하는 것이다. 그 정치적 배경은 고려후기로 올라간다. 무신정권기와 원 체제를 거친 공민왕 대의 큰 과제는 지금 말로 하면 ‘국정의 정상화’였다. 여기에 동참한 사대부들의 개혁은 조선왕조를 건국하였고, 세종을 거쳐 경국대전이 완성되기까지 150여 년 동안 정치 사회 개혁을 추진하며, 또한 보기 드문 방대한 법률을 제정했다. 이는 새 왕조의 초기에 일반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넘었다.

저자는 조선 초기의 일련의 입법에 대해 중국에서 11세기 왕안석의 개혁이 실패한 이후 동아시아세계에서 가장 야심차고 창조적인 개혁 시도였다고 평가한다. 조선 초기에 입법을 주도한 이들은 이미 확립된 전통과 어긋나는 개념과 견해를 한국 사회에 도입하려고 했으며, 이에 따라 갈등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그렇다면 그토록 과감하게 입법을 밀고 나간 동기는 무엇일까?


한국의 유교화 과정, “전통과 유교를 조화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타협의 산물”


조선 건국의 주역들은 성리학적 이념에 기반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함으로써 당시 한국 사회가 당면하고 있던 정치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려 하였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고려 사회는 친족 구조상 양계적인 사회였고 또한 한 남자가 여러 명의 부인을 둘 수 있었다〔竝妻〕. 역설 같지만 이는 남편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지 않아도 되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대부분은 친정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그 아들들은 모두 신분적으로 동등한 자격을 부여받았다. 게다가 고려 말에는 첨설직이나 검교직의 음직 들을 통한 신분 상승이 대대적으로 일어나고 있었으므로, 기존의 사회구성 원리가 계속 통용되는 한에서는 지배층의 팽창이 필연적이었던 것이다.

조선 건국의 주역들이 신유학 이론에 의거하여 적장자가 중심이 되는 문중 사회를 확립하려 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즉 부계 귀속성을 강조함으로써 모계를 통한 지배 신분의 확산이나 사회적 특권의 계승을 저지하려 했다는 것이다. 조선 초기 개혁적인 입법과 의식적인 노력의 결과, 조선 초기에 병처의 관행이 점차 폐지되어 갔다. 그리고 서얼 차별과 같은 중국에 없는 독특한 사회 관습이 생기게 되었다.

이후 양반층의 수가 자연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다수 양반들의 정치적 진출이 전에 비하여 어려워지면서 경제적 기반 또한 약화되는 처지에 놓였다. 그러자 양반층은 신유학이 말하는 적장자 중심의 문중 사회 이론을 확대 적용하여 장자우대 상속제를 확립함으로써, 가문의 명맥을 계속 유지하고자 했다. 이처럼 사회 구조와 변화를 지배 이데올로기와 관련하여 검토한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다.

그러나 도이힐러 교수가 내리는 결론은 한국 사회가 유교 사상에 깊은 영향을 받았음에도 완전한 유교사회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회의 재편이 신유학 이데올로기에 기초한 주형에 따라 이루어졌지만, 동시에 한국의 전통적 가치를 일면 보전하면서 타협하는 방향을 선택하였다는 것이다. 그 특징 가운데 중요한 것이 엘리트의 신분이 조선시대에도 계속 양계적인 조건으로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출계는 부계에 따라 결정되지만 신분, 즉 사회 지위의 정통성은 부계뿐만 아니라 모계를 통하여도 좌우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도이힐러 교수는 “전통과 유교를 조화시키기 위해 만들어 낸 독특한 타협의 산물”이었다고 말한다.


여성의 눈으로 본 유교화 과정의 역사적 조류


특기할 만한 것은 조선시대에도 계속하여 모계가 중요한 역할을 하기는 했지만 고려 말부터 조선 중엽에 걸친 과도기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는 것이다. 이 책이 고려와 조선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와 역할을 유교 사회로의 전환이라는 큰 역사적 조류를 염두에 두고 파악하려 한 점은 참으로 주목된다.

예를 들면, 고려시대 여성은 결혼 후에도 시댁의 일원이라기보다는 여전히 친가의 구성원이었으며 자녀 균분 상속으로 경제적으로도 독립적이었다. 그러나 출계 개념이 양계에서 부계로 바뀌게 됨에 따라 조선시대 여성은 결혼과 더불어 시가의 새로운 구성원으로 간주되었으며, 점차 경제적 독립성도 상실하게 되었다. 심지어 과부가 된 부인은 남편의 사후에 단지 일시적으로 그 유산을 간수하였을 뿐, 재산 처리에 대한 결정적인 권한이 없었다. 이혼이나 재혼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었고, 산사의 출입은 금지되었으며, 친정의 방문초자도 특별한 경우에만 허락되는 등 사회적 행동이 전에 없이 많은 제한과 구속을 받게 되었다.

여성의 권위 상실은 가족제도에서 깊은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신분제도에도 주목할 만한 변화를 일으켰다. 일례로 적서 차별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한 것이다. 엘리트 여성만이 적자를 낳을 자격이 있고, 사회 지위가 낮은 여성은 첩이 되어 그 자식은 서자(녀)가 되었다. 이는 일견 부계 제도와 모순으로 보이지만 실은 양계 제도가 부계제를 강화한 결과였다. 4조라는 개념에서 이 문제는 쉽게 이해된다. 4조란 부, 조, 증조, 외조를 가리키는 말인데 사대부 가문에서 시가에 들어간 여성만 처가 될 수 있었던 데 반해 첩의 경우에는 외조가(물론 있었지만) 없다고 생각되었다. 즉 처로 간주되는 여성만 자식에게 완전한 양계 제도를, 부계를 약화하지 않고 오히려 엄격한 제도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한국학’을 세계에 알린 명저, 사회인류학과 협동하며 중국과의 비교사 시도


한국 사회의 유교화 이전과 그 이후를 비교하기 위하여 저자는 고려시대 친족제도 자체에 대한 해명에 힘을 기울였다. 고려시대의 제한된 사료를 분석하고 심층 해석하기 위하여 사회인류학의 친족제도에 대한 성과를 원용한다. 친족, 조상 숭배, 가계 계승, 상속제, 결혼, 상장례를 기본 축으로 하는 가운데 고려시대 친족의 양계성, 외손이나 타성에 의한 가계 계승, 토지와 노비의 여성 균분 상속, 양계 친족간의 결혼 등을 깊이 있게 다룬다. 부계와 모계, 양계였던 한국의 전통적 친족 구조가 이른바 ‘당내(堂內)’라 하는 부계 문중으로의 변동하는 과정을 해명하는 저자의 작업은 세계적인 사회인류학 연구사에 있어서도 선례를 찾기 힘든 일대 개가로 꼽힌다.

한편 저자는 한국의 유교화 과정을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중국 사회(일본 사회와 함께)와 시종일관 비교한다. 이 책에서 저자가 전환기의 한·중 사회를 구체적으로 비교하여 얻은 결과 중 흥미로운 대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한국 사회는 중국 사회에 비하여 모계가 지니는 사회적 의미가 컸다. 상장례에서 한국은 모계 친족에 대한 배려가 훨씬 많았다. 혼례에서 중국은 신부가 신랑집에 와서 결혼식을 거행하는 ‘친영’이 보편화되었으나 한국에서는 왕실을 제외하면 조선 중기까지도 신부집에 가서 혼례를 거행하고 처가살이를 하였다. 때때로 친영제 시행이 강조되었지만 ‘반(半)친영’을 채택하는 정도에서 타협하였다. 또한 중국과 달리 조선에서는 관혼상제 중 관례가 별로 중시되지 않았다. 그밖에 고려나 조선에서 신원을 공식적으로 조사할 때면 언제나 4조라 하여 ‘외조’를 포함하는데 반해 중국 사회는 부계에 한했던 것이다.


저자의 말

1967년 가을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한국의 경제발전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어서 생활은 어려웠어도 살아 있는 유교전통을 목격할 수 있어서 참 기뻤다. 당시 내가 한국에 온 목적은 한국의 유교를 공부하자는 것은 아니었지만 가끔 지방에 내려가서 제사 같은 유교 의례를 구경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깊은 인상을 받았는데, 한국 사회에 관심이 커짐에 따라 한국의 전통적 사상과 사회를 공부하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옮긴이의 말

저자가 제기한 물음은 신분과 계급의 틀에 구속되어 이른바 한국적 ‘구별 짓기’를 간과한 종래 연구에 새로운 지표가 될 것이다. 서구 연구자들의 지적 성과를 일일이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중에서도 방대한 자료의 활용과 이론적 성과의 연계, 나아가 동아시아 전반에 대한 비교사적 접근 등에 기초한 마르티나 도이힐러 교수의 이 책은 그 정점에 놓여 있다고 보아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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