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손사래
신학 50년 여정에서 만난 선생님들
Description:... 이정배 교수의 50년 신학 여정과 그의 스승론
저자는 서문에서 “누구를 스승으로 삼느냐에 따라 생각(영혼)의 방향이 잡힌다”고 말했다. 이 말을 달리 표현하면 저자는 자기가 학문의 여정에서 스승으로 모신 31분의 이야기를 풀어놓음으로써 자기 생각의 방향을 여기에 펼쳐놓은 것이 된다. 신학의 길로 이끌어준 고교 시절의 선생님들이 있고, 신학의 바탕을 만들어준 신학교 선생님들이 있으며, 신학에 깊이를 더해주고 지평을 넓혀준 선생님들이 있다. 또 풍류신학을 주창한 소금 유동식 선생에 대한 찬사와 비판으로 책을 맺으면서 스승들의 창조적 계승자임도 잊지 않았다. 따라서 이 책은 이정배 교수의 신학을 이해하는 바로미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흔히 진보적 신학을 추구하는 감신대와 한신대를 구별할 때 토착화신학과 민중신학을 예로 든다. 밖에서 볼 때는 이런 감신과 한신의 학풍 중 한신의 학풍을 좀 더 레디컬하게 받아들인다. 한신 쪽에서 정치적으로 좀 더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는 감신의 학풍을 좀 더 불온한 신학으로 여긴다. 감신이 가진 자유주의 신학 전통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기성 교회는 이정배 교수의 신학을 불편하게 생각한다. 그의 스승 변선환 학장을 교회가 불편하게 여겨 20세기판 종교재판을 열었던 것과 같은 이유다. 하지만 불편하게 여겨진다는 것은 역으로 진리에 한 걸음 더 가깝다는 방증이다.
책의 씨줄과 날줄을 살펴보면 이정배 교수가 명예퇴직을 선택하고 소위 ‘거리의 신학자’가 된 이유에 납득이 간다. 운동권 선배들로부터 사회운동에 매진할 것을 권유받았으나 실존적 이유로 유학을 선택한 점, 5.18 당시 군 복무 중이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부채 의식 등은 50년 학문의 길에서 항상 그의 고민거리였다. 또한 그가 창조 질서 보존을 위한 생태신학 연구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된 이유, 동양사상 특히 유학(儒學)을 종교 간 대화 주제로 삼은 이유, 이웃 종교인들과 벗한 이유 등을 알 수 있다.
또 이채로운 것은 다석 유영모의 직계 제자로 함석헌 선생과 동문수학했던 김흥호 선생과의 인연이다. 감신에서 유영모를 연구하는 이가 거의 없는데 이 교수는 김흥호 선생에게서 다석 사상을 배울 수 있었고, 그렇게 해서 『유영모의 귀일신학』이란 책이 나올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민족의학자 장두석, 기업인 엄주섭 장로, 동학교도가 된 김성순 장로 등 교수가 아닌 이도 기꺼이 스승의 반열에 올렸다. 거기에 더해 감신으로 치자면 후배인 김준우 박사와 본인의 아내 이은선 교수도 기꺼이 선생으로 삼았는데, 이는 이 교수가 엄숙주의와 권위주의적 학문에서 벗어났다는 방증이며, 그만큼 학문의 깊이와 넓이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내 학문의 지향이나 주장이 곁가지로 새지 않도록 만류하시던 선생님들의 손사래는 더더욱 잊을 수 없다. 학문의 길 대신 목회의 길을 권유하신 분이 있었고, 반대로 내 성향을 꿰뚫으시곤 현장(現場)보다는 학문의 길을 더욱 채근하신 선생님도 계셨다. 또 어떤 선생님은 철저한 환경 전문가의 삶을 권하기도 하셨다. 선생님들의 이런저런 손사래가 없었다면 아마도 지금의 나는 다른 내가 되었을 것이다. 저마다 방향은 달랐으나 사랑의 마음이 느껴졌기에 지금도 선생님들의 손사래는 고맙기 그지없다. 그 손사래가 내 부족함을 채우고 모자람을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음을 고백한다.” - 서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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